화약냄새 짙어진 페만/제네바협상 결렬 파장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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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이라크 전의속에 평화모색/유엔등 3자 중재 돌파구 기대
미국·이라크간 제네바 외무장관회담의 결렬로 페르시아만사태는 전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미국은 이라크군의 전면 쿠웨이트 철수주장을 굽히지 않고 대 이라크 군사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는 팔레스타인문제 연계주장등 종전 입장을 고수,철군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는 15일의 이라크 철수시한을 5일 앞둔 현재 유럽공동체(EC) 및 유엔이 중재에 나서고 있다.
제네바회담 결렬의 배경과 앞으로 미국·이라크가 취할 행동방향과 유엔 등의 중재노력 등을 정리한다.<편집자주>
○미국의 입장
미국은 베이커·아지즈 회담의 결렬로 쿠웨이트 사태의 평화적 해결 기회가 더욱 멀어졌으나 유엔의 철수시한인 15일까지 여러 채널을 통한 외교적 타결가능성에 한가닥 희망을 걸면서 무력사용에 대비한 후속조치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미·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결렬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페르시아만 위기가 전쟁없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실망을 표시한 뒤 미국이 취할 다음조치에 대해 미 국민과 우방들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번 회담의 결렬이 이라크측의 완강한 자세 때문이라고 비난은 하고 있으나 외교적 교섭이 종착역에 온 것으로는 보지않고 있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나 베이커 미 국무장관의 회담직후의 발표내용을 볼 때 여러곳에서 이러한 희망적인 견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 이번 회담이 결렬됐다해서 곧바로 전쟁으로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나는 앞으로 언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면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늦지 않았으며 이는 전적으로 후세인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이라크의 발표만을 놓고 볼 때 회담에서 양쪽이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미국은 미·이라크의 채널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암시를 이라크로부터 받지 않았을까 하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라크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철수했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방법을 택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의 감시하에 이라크가 철수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나,아지즈 외무장관이 회담 후 제네바에서 알제리 외무장관과 접촉을 갖기로 하는 등의 움직임,또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이번 주말 바그다드를 방문하기로 한 것 등이 이러한 전망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낙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결렬발표를 하면서 12일까지 바그다드에 주재하고 있는 미 외교관을 모두 철수키로 했다고 발표했으며,미국은 전쟁에 대비해 중동지역의 미 시민을 소개시킬 예정이다.
이와 함께 15일 이후 미국의 무력사용에 대한 시나리오가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레스 애스핀 미 하원 군사위원장은 미국의 군사작전은 단계적으로 벌어질 것이며 속전을 통한 「1개월내 승리」를 예견하고 있다.
그는 『미국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동시에 공격하되 주로 공군력에 의존하여 희생자수를 줄이고 육군은 최종단계에 투입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애스핀 위원장은 『사상자는 3천∼5천명에 달하나 전사자는 5백∼1천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앞으로 남은 5일동안 우방과 다시한번 사태 전반을 검토한 뒤 15일 이후의 태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이라크 전략
이라크측이 오는 15일의 시한까지 불과 5일동안에 취할 수 있는 대응방향은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한 기존의 화·전 양면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측은 최후의 「담판」으로 일컬어지는 제네바회담에서도 쿠웨이트 철수를 팔레스타인문제 해결과 연계,결코 「유동성」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일단 반미적 아랍인들에게 면목을 잃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라크로서는 유엔이 제시한 철군시한까지 고조되어 가는 전운에 맞춰 우선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번 회담의 결렬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응전불사 자세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처럼 이라크가 다국적군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라크는 줄곧 주장해온 부비얀도·와르바도의 조차 또는 할양,팔레스타인문제를 다룰 중동국제평화회의 개최 등의 협상카드를 내세워 미국 외에 프랑스·EC(유럽공동체)·유엔 등과의 다면적 외교접촉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라크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페르시아만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외교적 주도권을 잠식시키려는 숨겨진 의도를 갖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대 이라크 서방·아랍 연합세력들간의 균열도 노리고 있지 않느냐는 분석인 것이다.
개전이 임박한 시기에 이라크의 최후의 「숨겨진 카드」가 무엇인가와 관련,최근 프랑스에서 나온 페르시아만 시나리오는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제네바회담 직전에 나온 이 시나리오는 이미 회담의 결렬을 점치고 있으며 그 결과 일단 오는 15일까지는 전쟁의 분위기가 고조되지만 최종시한 직전 이라크가 ▲대 이라크 무력사용 배제 ▲중동배치 외국군철수 ▲중동문제의 총체적 해결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일방적으로 쿠웨이트 철수계획을 공표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3자 시각
미·이라크 외무장관의 제네바회담이 결렬됨으로써 페르시아만의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EC(유럽공동체)·유엔 등이 외교무대의 전면에 잇따라 나섬에 따라 페르시아만 평화협상은 3자에 의한 중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4일과 지난해 9월 각각 페르시아만 사태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안을 낸바 있는 프랑스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9일 미·이라크 제네바회담이 실패로 끝나도 철수시한인 15일까지는 막바지 모든 외교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협상의 중재역을 맡고 나섰다.
프랑스가 내놓았던 평화안의 골자는 「이라크군의 쿠웨이트로부터 철수」라는 미국의 요구사항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라크측의 주장인 「팔레스타인문제를 포함한 중동국제회의 개최」도 아울러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이탈리아 등 많은 유럽국가들로부터 현실적인 제안이라는 지지를 받았으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환영을 표명했었다.
이는 팔레스타인 연계를 강력 거부하고 있는 미국의 반발과 영국의 거부의사 표명으로 적극 검토되지 못했으나 미테랑 대통령은 제네바회담 전 미셸 보젤 프랑스 하원 외교위원장을 바그다드에 파견한데 이어 계속해서 페레즈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그리고 소련측과도 접촉하는 등 독자적 평화교섭노력을 가속화해 왔다.
이와 함께 지난 4일 페르시아만 위기와 관련,긴급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던 EC도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의 룩셈부르크 초청이 이라크측으로부터 일단 거부당했으나 9일 다시 이라크에 대해 수일내에 알제리에서 회담을 갖자고 제안하고 나섬으로써 협상에 발벗고 나섰다.
한편 케야르 유엔사무총장도 10일 바그다드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라크측도 이를 환영하고 나섰기 때문에 케야르·후세인 회담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미·이라크 당사국들의 협상이 실패로 판가름난 지금 고조되어가는 전쟁분위기를 어떻게든 잠재워야겠다는 세계 각국의 여론은 이들의 협상노력에서 뭔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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