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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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소설만 쓰고 살아가기로 한 지 3년째 되는 올해에도 개인적으로 하고싶은 일은 많다. 결국 해를 넘기고 만 『빙벽』의 완간을 보게 될 것이고 오래 뜸을 들여온 셈인 『중류사회연구』 『상류사회연구』 『하류사회연구』의 3부작을 차례로 써나가고 싶고, 『대한제국일본침략사』도 지면이 확보되는 대로 발표를 시작할 예정이다. 늘 너무 무리하지 않느냐는 염려의 말은 듣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상정해 놓고 그것을 쫓아가려 애쓰는 것이 나의 일하는 방법이다.
지난 연말에는 두 가지의 충격을 맛본일이 있었다. 하나는 여러신문이 앞다투어 발표한 90년 한햇동안의 베스트셀러 목록이었다. 대형서점을 기준으로 한 「베스트셀러 50」 가운데 내 판단으로 「국내의 순수 창작소설」이라 할만한 책은 겨우 4권에 불과했다. 그나마 2권은 국내 유명 문학상의 수상작품집이었다. 그런 기사를 대한 며칠 후에 몇 사람의 여대생과 대화를 함께 하게 된 일이 있어서 나는 그 「베스트 50」의 톱을 차지한 유명 여류작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름을 떨쳐온 작가요, 90년 최대의 베스트셀러를 냈으며, 더욱이 그 책이 여성문제를 다룬 것이기에 당연히 반색할 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여대생들은 놀랍게도 그 여류작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적어도 나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새삼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의 문화풍토가 얼마나 척박한 토양을 가지고 있는가를.
문화부가 출범한 이후로 여러가지 문화진흥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어떤 방식이든 창작하는 사람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을 지양하고 문화의 향유층을 넓혀가는 일에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본다. 앞서 내가 말한 두 가지 충격은 우리의 순수예술이 얼마나 대중들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선택받은 계층이라 할 대학생들이 이러할 때 사회적으로 그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수문학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바로 이런 거리를 좁혀주는 일이야말로 정책과 자금이 투자 되어야 할 부분이다. 작가들에게 지원금을 준다든지, 창작촌을 만든다든지 하는 일들은 시책을 위한 시책일 뿐이다. 향유층이 확대되면 창작은 저절로 활성화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또 한가지 간과해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창작인들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이다. 순수창작물이 외면당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창작인들이 당대의 독자들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사회는 급변하고 독자들의 감수성은 달라지고 있는데 작가들은 구태의연한 주제와 방법론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문화는 결코 어느 소수 동호인 집단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여기」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이 가급적 폭넓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인들 스스로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서 자신의 순결성을 보장 받으려하는 태도는 이제 과감히 버릴 때라고 본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귀족주의 문화」는 그만 청산되어야 한다. 내 작업에 국한시켜 말한다면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는 소설」을 쓰려 노력하고 있다. 내 소설이 어떤 불멸의 가치를 창조하거나 사회를 변혁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동시대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한 몫 할 수는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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