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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용구(음악·무용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91년 문화계를 전망하면서 「올해엔 이렇게-문화발전을 위한 제언」을 시리즈로 마련한다. 먼저 문화전반의 흐름을 살펴보는 원로와 중진의 글들을 싣고 이어 문학·미술·음악·연극·학술·영화·방송 등 문화 각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제언들을 각각 다른 목소리를 가진 두 사람의 의견을 대비시켜 엮는다. 현실과 상상력의 행복한 조화와 그를 통한문화·예술의 이 시대에의 기여가 어떤 길 위에서 이루어질지 알아본다.【편집자주】…○
나는 세기말의 90년대로 접어든 작년을 공연예술의 위기상황으로 진단했었다.
그 진단은 우리 사회가 아시아의「나는 용」에서 「종이용」(paper dragon)으로 평가절하 당하게 된 상황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단이란 임상의학에 속한다. 원인의 규명은 또 다른 얘기다.
나는 그 원인을 지도형의 군사독재로 근대화를 밀어붙인 「잘난 사람」들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극히 소박하지만 만고의 진리인 속담을 무시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순조로운 발전의 핵이 되어주는 기초 다지기-즉 민주화된 사회와 기술개발-보다 콩팥을 가리지 않고 서둘렀기 때문이 아닌가.
기술개발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공연예술도 예외일수는 없다.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로 문화예술의 콩과 팥이 될 영재를 골라 조기에 길러내는 국립의 교육기관 하나도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그 숱한 대학의 무용과·음악과·연극영화과에서 이미 뼈대가 굳어진 예술가지망생들이 잡초처럼 쏟아져 나왔고,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수효는1년에 5천명을 웃돌리라.
그 에너지의 누수현상을 결정적으로 가시화 시킨 것이88년 서울올림픽의 문화예술축전 이였다.
체육이라는 한판승부의 세계에서 4위를 했다고 모두가 들떠있을 때 나는 공연예술에서 기술적인 기초 다지기에 소홀했던 우리나라의 참담한 국제수준에 가슴이 쓰렀던 것이다.
그 쓰라림은 단합과 질서로 놀라운 기적을 연출한 올림픽으로 우리민족의 뛰어난 아이덴티티(민족성)를 확인시켜준 반면에 잘난 사람들의 오판으로 기량의 낙후를 가져온 사실과, 뼈대가 굳어버린 예술집단의 장인정신, 즉 프로페셔널리즘의 부재에서 오는 절망감 같은 것 이였다.
우리사회에도 과거에는 전통으로 살아있었던 장인정신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두 가지의 메리트(조건)가 있다.
첫째는 완벽성이요, 둘째는 무명성 이다.
그들에게 적당주의는 있을수 없고 자기를 버리는 협동정신이야말로 무명성에서 온다.
공동체사회에서 장인정신이 가계중심으로 이어져 온 까닭도 여기 있다.
그리고 이처럼 완벽주의와 협동정신이 승화되어야만 바람직한 종합적 예술세계가 현존한다.
우리의 자랑인 에밀레종이나 석굴암의 석불 상을 떠올리면 쉽게 납득이 가리라.
서울올림픽의 예술축전이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우리 공연예술의 적당 주의와 아마추어적 생태, 즉 완벽성과 무명성의 장인정신 부재였다.
오히려 나는 김일성 체제의 북반부에서 장인정신의 계승을 본다.
친일적인 문화쓰레기가 온존하는 우리 사회가 한편으로는 천박한 미국의 GI문학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북반부에서는 오직 소련 식 조기영재교육시스템과 몰개성적인 장인주의로 공연예술을 키워나갔다.
다만 정보화사회의 전파처럼 세계가 지평공간으로 개방되는 마당에 아직도 비행기멀미를 하는 독재자가 군림해서 폐쇄공간을 고집하고 비행기멀미 같은 낙후된 생각을 강요해 경직성을 헤어날 길이 없기는 하지만일.
그러나 그런 만큼 금년의과제로 계속될 남북문화교류에서도 겸허하게 장인정신의 부재를 극복하고 국가적인 조기영재교육의 실현을 강구하면서, 서둘러 동질성을 찾기보다 이질성의 확인에서 시작해야 하리라고 본다.
예컨대 그들은 무용훈련에서 과학적으로 체계화가 공인된 발레시스템을 택하고있으나 우리나라 한국무용은 즉흥성을 바탕으로 춤사위를 전수 받아 오고 있기 때문에 동질성을 찾으려면 훈련과정의 이질성이 우선 확인되어야 하고, 따라서 동질성은한국 춤사위의 과학적인 체계화가 실현된 뒤에 남과 북이 같은 훈련과정을 택할 수 있을 때에만 찾아진다는 얘기가 된다.
예술세계에서 안이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안이하게 동질성을 찾아서 통일을 이룩하자는 주장은 속셈이 따로 있는 구호가 아니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동서독 통일의 성급한 실현을 반대했고 지금도 염려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시각을 지지하는 입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전락하는「종이용」으로부터 창공을 향해 다시 날아올라야하는 과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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