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사태' 쟁점화에도 말 아끼는 日정부…'7월 보고서' 기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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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갈등 양상으로 번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14일 이 사안에 대한 추가적인 입장 표명을 삼가고 있다. 전날(13일) 한국 대통령실이 “우리 기업에 대한 부당한 조치 땐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독도 방문을 비판하는 데 그쳤다. “라인야후가 7월 제출할 대책안을 확인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듯한 모습이다.

14일 서울에서 열린 네이버의 라인 지분 매각 반대 집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마스크를 쓴 시위자가 일본의 메시지 앱인 라인의 로고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14일 서울에서 열린 네이버의 라인 지분 매각 반대 집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마스크를 쓴 시위자가 일본의 메시지 앱인 라인의 로고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1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조국 대표의 독도 방문에 대해 “사전 중지 요청에도 강행됐다는 데 대해 극히 유감”이라며 “당일(13일) 한국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국 대표가 독도 방문의 이유로 제시했던 라인야후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앞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전날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한일경제인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한국 재계 인사들과 만났다. 기시다 총리는 내년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임을 상기하며 “(양국이) 다양한 협력과 상호 이해의 싹을 키워가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한국 대통령실이 공식 입장을 밝히는 등 양국 경제계의 관심이 라인야후 사태에 몰렸지만, 관련 내용은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한국 내 여론 악화에도 일본 정부가 추가적인 입장을 내지 않는 건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10일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일본 총무상은 메신저 앱 ‘라인’ 운영사인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 요구를 포함한 행정지도를 한 것과 관련해 “경영권 관점에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마쓰모토 총무상은 “라인야후 측이 향후 제출할 (대책) 보고서를 확실히 확인하겠다”며 7월 보고서 내용에 따라 입장을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행정지도, 강제성 없지만 기업에 큰 압박”

전문가들은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지분 조정’ 문제로 파악한 라인야후의 모회사 소트트뱅크와 네이버가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일본 정부는 결과를 기다리며 말을 아끼는 것으로 분석한다. 총무성이 현재 시점에서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업무 위탁 관계를 정리하기로 한 만큼, 지분 문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밝힐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로도 추정된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결국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지분을 넘기는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서 일본 정부가 이를 멈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 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상. 총무성 유튜브 캡처

일본 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상. 총무성 유튜브 캡처

이번 사태의 불씨가 된 행정지도라는 제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부처가 내리는 행정지도는 법적으로 강제성은 없지만, 이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지역학부 교수는 “일본의 행정지도는 1940년대 전쟁 중 자본·노동시장, 기업 거버넌스 등을 정부가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돼 전쟁 이후 고도성장기까지 활용됐으며 지금도 그 관행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법적 처벌을 강제할 순 없어도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어 기업으로선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향후 쟁점은 라인야후가 7월까지 총무성에 제출하기로 한 대책안에 ‘지분 관계 조정’과 관련해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다. 미야카와 준이치(宮川潤一)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CEO)는 9일 결산설명회에서 “네이버와의 지분 조정에 대한 결론을 7월 제출할 보고서에 담으려 했지만 시간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총무상의 발언대로 행정지도의 의도가 지분 조정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대책안에서 라인야후가 모회사 네이버와의 위탁관계를 정리하고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서 이야기가 마무리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원래 의도가 ‘라인의 일본기업화’라면 향후 ‘경제안보’ 논리를 동원해 다시 개입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창민 교수는 “일본은 지난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고 전기·가스·석유·금융·철도·통신·운송 등 14개 업종의 특정 사회 기반(인프라) 사업자가 투자나 사업 활동에서 정부의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했는데, 라인야후도 여기에 포함됐다”며 “일단 행정지도로 라인야후에 경고를 보냈지만 변화가 없을 경우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통한 법적 제재에도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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