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에 수박 두통도 못사는데…“물가 더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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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올해 전망치 올린 IB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농산물·유가 등이 들썩이고 경기 회복세도 빨라 올해 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에 이를 거란 데 무게가 실린다.

1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IB 8곳이 내놓은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달 말 기준 평균 2.5%로 집계됐다. 한 달 전인 3월 말(2.4%)과 비교하면 0.1%포인트 오른 것이다. 다만 IB의 평균 전망치는 지난 2월 한국은행이 제시한 올해 전망치(2.6%)보다는 0.1%포인트 낮다.

이들 IB 8곳 중 절반 넘는 5곳이 기존보다 예측을 올려 잡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2.3%에서 2.4%, 씨티는 2.5%에서 2.6%, HSBC는 2.6%에서 2.7%로 각각 0.1%포인트씩 상향했다.

JP모건과 노무라는 2.4%에서 2.6%로 바꿨다. 바클레이즈는 기존 전망치인 2.7%를 지켰다.

여기엔 ‘금(金)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강세,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기름값 불안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0.6% 상승했다. 석유류 가격도 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최근엔 일조량 부족 등으로 여름 제철 과채인 수박 가격마저 크게 올랐다. 이상 기후로 인해 먹거리 가격이 오르는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0일 기준 수박(상품) 중도매인 판매가는 1개에 2만5520원으로, 전년 대비 30.9% 올랐다. 평년과 비교하면 41.9%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5월 수박 출하량은 전년 대비 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식(모종을 밭에 심는 과정)과 수정 시기에 일조시간이 감소했고, 저온으로 인해 뿌리 활착이 지연되면서 착과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수박뿐만이 아니다. 5월 참외 출하량은 생육 장애로 수정과 착과가 저조하고 병해충 발생이 증가한 영향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파프리카 역시 출하량이 6%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사과·배 가격이 크게 오른 것도 지난해 냉해 피해로 인한 공급 감소가 주원인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2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유가 추이나 농산물 가격 강세 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 반등 흐름이 뚜렷해진 것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한은이 발표한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넘어선 1.3%(전 분기 대비)를 기록한 게 대표적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IB가 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데엔 1분기 성장률 호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내수 수치가 나쁘지 않다 보니 향후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좀 더 느리게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더디게 떨어지면 한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국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점도 물가 때문에 3~4분기 이후로 미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Fed 움직임, 국내 경기 회복 기류와 맞물려 한은의 금리 인하가 연내 이뤄질지도 미지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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