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안락한 성 뛰쳐나온 현대판 공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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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작가들은 공주에게 "깨어나! 너도 도전하란 말야!"하고 외치고 있다. 배빗 콜은 '내 멋대로 공주'(비룡소)에서 왕자란 왕자는 모조리 격파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전대미문의 공주를 창조해 냈다. 바바라 워커는 운명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흑설공주 이야기'(뜨인돌)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눈부신 여권신장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자아이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부딪히는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여자라고 해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고 배웠지만, 환상적인 페미니즘 이론이 반드시 현실에도 반영되는 건 아니다. 엄마들은 딸의 이런 혼란에 실행 지침은 제시해 주지 못하면서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추상적인 주문만 한다. 딸에게 조급한 기대만 잔뜩 부푼 엄마들과 역경에 내성이 전혀 없는 딸들에게 마리 크리스틴 엘거슨의 '여자 아이, 클로딘'(바람의 아이들)을 권한다.

클로딘은 온종일 베틀 앞에 앉아 천을 짠다.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없는 클로딘은 차라리 엄마 아빠가 자기를 팔아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행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세상 모든 딸들의 대사인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 절로 터져 나온다. 이모네로 요양을 떠난 클로딘은 그곳에서 글자를 깨우치고 그림 그리는 행복을 알게 된다.

"남자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질 거야. 나를 우러러보게 할 거라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각고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클로딘은 결국 아버지의 몰이해를 이겨내고 상급학교에 진학해 디자이너의 꿈을 이룬다.

편하고 안락한 성을 뛰쳐나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현대판 공주들과 클로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 새 도전의식과 용기, 그리고 눈물겨운 노력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포부는 야무지지만 치열한 전투의식은 실종된 12세 이상의 어린이와 버튼만 누르면 즉각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동판매기 부모'들을 위한 책이다.

임사라<동화작가>(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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