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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성희롱 신고 뒤 업무배제…그후 직장 괴롭힘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1년 10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직장갑질119 스탭이 직장내괴롭힘금지법과 관련해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2021년 10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직장갑질119 스탭이 직장내괴롭힘금지법과 관련해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한 대기업 계열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A씨는 올해 초 상사의 성희롱 발언을 사측에 알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인 상사로부터 업무에서 배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상사가 자신의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으면서 동료들에겐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을 하는 등 따돌림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A씨는 이 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워 휴직했다. 해당 상사는 내부 절차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이 일부 인정돼 경징계를 받았지만, A씨는 몇 달간 이어진 싸움에 지쳐 더이상 회사를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직서를 냈다.

오는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만 5년을 앞두고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28건으로 집계됐다. 법 시행 첫해인 2019년 7~12월 2130건에 이어 2020년엔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유형별로 보면 폭언이 32.8%로 가장 많았다. 부당인사와 따돌림·험담이 각각 13.8%, 10.8%로 뒤를 이었다.

작년 신고 사건 중 6445건은 처리가 완료됐다. ‘법 위반 없음’이 2884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고인이 취하한 사건은 2197건이었다. 과태료가 부과(187건)되거나 기소(57건)된 사건은 전체 신고 건수의 약 3%에 불과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대부분 처벌 조항이 없다. 괴롭힘 행위 당사자가 사용자나 사용자 친인척일 경우 1000만원 이하, 객관적 조사나 피해자 보호 등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 형사처벌은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어겼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직장인 중 상당수는 인사 불이익 등을 우려해 별다른 조치 없이 괴롭힘을 견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7일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 중 305명은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답했고, 이 중 57.7%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변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는 대부분 상사인 경우가 많은데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피해자가 괴롭힘을 호소해도 회사에서 상사 편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 피해자가 더이상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사업장 및 특수고용직까지 확대하고, 사건 처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가진 노동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다루는 방안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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