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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상현의 과학 산책

가르칠 수 없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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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매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하는 말이 있다.

“그동안 많은 학생을 만나봤지만, 이번 수강생들은 특별했어요. 항상 호기심으로 수업에 참여했지요. 따뜻하면서도, 예리했어요. 좋은 제자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박수와 탄성이 잦아질 때쯤, 다음 대사를 이어간다.

“참고로, 강의 평가가 시작되었어요.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대개는 야유 섞인 웃음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실은, 농담을 빌린 나의 진심이다. 부족한 나의 말을 경청하고, 깨달아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해진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이 어려운 일이, 이번에도 겨우 성공했구나.

한국의 교육은 위기다. 과열된 사교육은 군비 경쟁처럼 치킨게임 중이다. 개인의 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의 계층을 공고화한다. 모두에게 명백하지만, 누구에게도 대안은 없다. 외부의 도전은 어떠한가. 기술 전쟁에는 항복의 선택지조차 모호하다. 기초과학의 격차는 비대칭 전력이다.

1970년대 프랑스에도 교육의 위기가 있었다. 미소 강국의 경쟁은 프랑스를 후진 주자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념의 대립은 교육에 혼란을 가중했다. 이때, 수학자 장 르레이(1906~98)는 목소리를 낸다. 허약해진 과학 교육은 천연자원의 멸절만큼이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강조한다. 과학은 학생 자신이 이해하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의 태아가 발달의 과정을 거치듯이, 각자의 마음속에서 과학을 재발견하여야 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과학과 기술을 전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탐구심을 전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금언도 일맥상통한다. “마음은 채워질 그릇이 아니라, 불붙여야 할 불꽃이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깨닫는 바다. 과학은 가르칠 수 없다. 선생은 궁금증의 불씨를 심을 뿐이다. 열린 마음들이 스스로 반짝일 때, 과학은 다시 태어난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