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울의 아주 작은 홍대 클럽에서 관객 20명을 놓고 시작했어요. 절반 이상이 지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여러분들과 함께해요.”
기획사가 만든 밴드부터 홍대 인디밴드까지 각광 #“해외 진출하는 한국 밴드 늘어날 것”
밴드 더로즈(김우성·박도준·이하준·이재형)는 지난 14일과 2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객석을 가득 채운 관중들에 감격한 듯 이같이 말했다. 리더 김우성은 “음악은 힐링이다. 여러분들과 오늘 음악으로 사랑과 에너지를 나누겠다”고 말해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국 밴드 최초로 코첼라 무대에 선 더로즈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밴드다. 코첼라에서도 관객들의 떼창 모습이 여러 차례 카메라에 잡혔다. 이들은 한국어 가사까지 따라해 눈길을 끌었다. 객석의 환호는 두 번째 정규 앨범 ‘듀얼’(2023)의 선공개 싱글 ‘백 투 미’에서 절정을 이뤘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곡으로, 유튜브 뮤직비디오엔 3만개 이상의 영어 댓글이 달렸다.
앨범 ‘듀얼’은 한국 밴드 사상 처음으로, ‘빌보드 200’ 차트에서 83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더로즈는 지난해 미주 투어와 올초 유럽 투어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국내외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MPMG 서현규 이사는 “공연에서 밴드 수요가 확실히 늘었다. 영어 앨범을 낸 한국 밴드들에겐 특히 관심이 쏠린다”며 “더로즈 처럼 해외에서 각광받는 한국 밴드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서 알아본 K밴드 저력
웨이브투어스(김다니·차순종·신동규)도 해외 관객이 먼저 인정한 한국 밴드다. 스포티파이에서 월별 청취자 수가 724만명(2023년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앨범 ‘플로스 앤 올’ 발매를 기념한 동명 투어로 북미 18개 도시 20회 공연을 매진시켰고, 올초 아시아와 유럽 무대에도 올랐다. 이 밴드를 올해의 음악인상 후보에 올린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 주최측은 “세계 어디를 가도 노래가 들려오는, 오늘 날 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밴드”라고 평가했다.
톱10 진입한 데이식스
국내 차트에서도 밴드 음악이 강세다. 그 중심엔 밴드 데이식스(성진·영케이·원필·도운)가 있다. 입대 전인 2017년 발매한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역주행하면서 각각 멜론 일간차트 10위, 11위(29일 기준)에 올랐다. 특히 ‘예뻤어’는 이효리가 KBS2 ‘더 시즌즈’에서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추억하게 한 노래"라며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 이들이 지난달 18일 발매한 미니 8집 ‘포에버’는 JYP 아티스트 최초로 전곡이 음원차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12일~14일 잠실실내체육관 콘서트에서 3만 4000명의 관객을 모은 데이식스는 “밴드 사운드로 구현할 수 있는 음악으로 팀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5월 18~19일 공연을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시킨 실리카겔(김건재·김한주·김춘추·최웅희)은 밴드 붐의 주역으로 불린다. 2013년 평창 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밴드였다가 2016년 동명의 정규 앨범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해 EBS ‘헬로루키’ 대상을 받았고, 인디 신에서 ‘힙하다’는 입소문을 타다가 2022년 ‘노우 페인’ 발매를 기점으로 '슈퍼스타 밴드'로 등극했다.
방송 노출이 많은 편도 아니고 프론트 맨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도 아니지만, 좋은 음악과 고퀄리티 라이브 영상으로 밴드 고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며 팬을 끌어모았다. 밴드 붐에 힘입어 개성 있는 밴드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유희열이 대표로 있는 안테나는 자사 첫 밴드인 드래곤포니(안태규·편성현·권세혁·고강훈)를 연내에 론칭한다. 2인조 밴드 NND(데인·영준)와 JTBC ‘슈퍼밴드’를 통해 이름을 알린 9001(조곤·주원·의건·원우)은 최근 일본에서 공연을 가졌다. 역주행 중인 데뷔곡 ‘개화’로 주목받고 있는 루시도 ‘슈퍼밴드’ 준우승자 출신이다. 지윤해(술탄 오브 더 디스코),임현제(혁오), 전일준(장기하와 얼굴들) 등 유명밴드의 실력자들이 뭉친 봉제인간도 ‘핫’하다. 최근 첫 정규 앨범 ‘12가지 말들’의 12개 트랙을 전부 뮤직비디오로 제작하는 등 실험적 시도를 펼치고 있다.
이같은 밴드 붐에 대해 2000년대 초반 밴드 스키조로 활동했던 주성민 마름모(음악레이블) 대표는 “요즘은 메이저와 인디를 나눌 것 없이 음악 팬들이 밴드 사운드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균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동안 힙합과 K팝에 쏠렸던 음악 팬의 관심이 밴드 음악으로 옮겨오며, 장르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밴드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진 데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밴드 음악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밴드 음악 시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