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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전의 경고 "독과점·담합 안돼요"…이게 '보이지 않는 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에피소드3 『국부론』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가 들려주는 국부론 이야기』(2011) 박주헌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2010) 김수행

세줄 요약

-국가의 부는 보유한 땅의 크기나 귀금속의 양이 아니라 국민이 생산한 재화의 양으로 나타난다.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분업과 교역, 그리고 정부나 대자본이 통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장이 필요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노력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효율적으로 사회적인 부를 증진할 수 있다.

주요 내용

국부론. 이종인 역(2024)

국부론. 이종인 역(2024)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에 대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정의했다. 누구나 제목을 알고, 저자도 알고, 심지어 내용까지 대충 아는데 정작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고전이라면 누구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꼽을 것이다. 심지어 경제를 전공한 나까지도 국내 완역본으로 11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전부 읽지는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4년간의 커리큘럼 대부분이 국부론을 배우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다양한 비판을 공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현대 경제학의 주류가 스미스를 재해석한 '신고전파(Neoclassical Economics)'일까.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현대 경제학의 원류인 국부론을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올해 초 현대지성에서 펴낸 완역본을 볼 필요는 없다. 대신 2011년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펴낸 『애덤 스미스가 들려주는 국부론 이야기'를 권한다. 원래 『국부론』은 총 5권으로 구성된다. 1~2권은 경제 이론이고, 3권은 로마 이래 산업 발달의 역사를 개관하고, 4권은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경제 이론을 비판하고, 5권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세금에 논한다. '국부론 이야기'는 이 가운데 현재 상황과 큰 관련이 없는 3~4권을 생략하고 1, 2권을 중심으로 5권을 가미해 요약했다.

애덤 스미스가 들려주는 국부론 이야기. 박주헌.

애덤 스미스가 들려주는 국부론 이야기. 박주헌.

이 책은 거의 250년 전인 1776년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토지에 기초한 중농주의가 지배하던 프랑스와 신대륙과의 교역(을 빙자한 착취)을 중시하는 중상주의가 판치던 스페인을 둘러 본 스미스는 산업혁명에 접어든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새 이론을 창시했다. 부는 오직 땅에서만 나온다는 중농주의는 상공업의 성장에 관해 설명하지 못했다. 스미스는 중농주의에 대해 "지금까지 인류에게 무해했고, 앞으로도 무해할 학문체계의 오류를 길게 검토할 가치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상주의는 무역을 통해 자본과 귀금속(금, 은)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국부를 증진하는 방안으로 봤다. 제로섬 게임인 교역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는 사치 억제, 국내 산업 육성, 보호무역 등을 통해 경쟁국의 금, 은을 빼앗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렇게 얻은 국부로 강력한 군대와 관료제를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괜히 당시 유럽의 많은 전제 왕정 국가가 중상주의 정책을 쓴 것이 아니다. 중상주의는 식민지 경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실마리가 됐다.

국부론은 부의 원천이 땅이나 금이라는 통설을 거부했다. 국부의 원천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량 즉, 고용량과 노동 생산성에 있다. 여기에 자본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더 많은 사람이 더 효율적으로 일할 때 국부는 증가한다. 국부론에 나오는 유명한 예가 있다. 10명의 노동자가 하루 200개의 핀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여기서 공정을 18개로 나눴더니 생산량은 4만8000개로 240배 뛰었다. 분업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전한 핀 하나조차 제 손으로 만들 수 없게 된 노동자는 임금을 받아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한다. 필연적으로 화폐제도와 시장경제가 발달하고 규모의 경제가 자리 잡는다. 물건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수준으로 정해진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회의 연간 수입은 언제나 그 사회의 산업에서 생산하는 총 생산량의 교환 가치와 정확히 같다. 그러므로 최대의 이윤을 얻고자 하는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연간 수입을 만들려 노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분명히 개인은 공공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의도치 않았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사회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하려 할 때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은 더 자주, 더 효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에 따라 효율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조절되고, 자유무역은 두 나라 모두의 부를 늘려주는 윈-윈 정책이 될 수 있으며, 기술혁신과 자본의 축적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이 대목에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앞서 살펴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가 괜히 "국부론은 좋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책이다"라고 한 게 아니다.

TMI

국부론만큼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책도 드물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자유방임 내지는 자유지상주의다. 국부론에서 단 한번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스미스가 주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부와 거대 상인이 결탁해 중상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던 시대에 살았다. 그래서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을 해치는 개입을 비판한 것이다. 특히 자본가가 제안하는 새로운 상업적 법률 및 규제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을 둘러싼 두번째 오해는 기업이나 지주 등이 독점, 매점매석 같은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풀이하는 경우다. 스미스는 인간의 이윤 추구(self-Interest)를 경제 행위의 주요한 동력으로 봤지만 이기심(selfishness)까지 옹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 도덕적 한계 내에서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핵심은 "분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렇게 만든 상품을 자유로운 시장에서 거래한다면 개개인의 부가 효율적으로 극대화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부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독점이나 담합을 막을 의무가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명제다. 국부론이 '경제학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김수행.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김수행.

하지만 성경조차 해석을 놓고 가톨릭, 동방 정교, 개신교가 갈리고, 심지어는 배다른 형제인 이슬람까지 나타나는 판이다. 경제라고 다를 바 없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왜냐하면 정부는 대개 솜씨 없는 운전사니까. 신자유주의가 공기업 민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에서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케인스주의를 비롯한 중도우파), 시장제도를 유지하되 토지, 공장 등 생산수단을 공유하자(사회민주주의를비롯한 중도좌파)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신고전파는 국부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경우다. 이와는 반대로 좌파적인 시각에서 해설한 책이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이다. 저자인 김수행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서 『자본론』 강의를 개설했다. 국부론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뿌리를 찾고, 현대 경제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해법 역시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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