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맹독성 정책" 독일 떠나 프랑스로…전기료가 갈랐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022년 10월2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2022년 10월2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맹독성이 있다.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지난 2월 6일 독일산업연맹의 지그프리트 루스부름 회장,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 인터뷰)

“프랑스는 국제 투자자들로부터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지난 2월 29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보도)

유럽연합(EU)의 양대 경제대국 독일과 프랑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독일에선 기업들이 국경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프랑스로는 해외 기업이 몰려든다. 양국의 상반된 에너지 정책이 핵심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통계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취합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프랑스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363억6500만달러를 기록하며 EU에서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독일은 110억3900만달러로 프랑스의 30% 수준에 그쳤다. 프랑스 FDI 수치가 독일을 넘어선 건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지난해 프랑스와 독일의 격차는 더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프랑스 엘리제궁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해 1815개의 국제 투자 프로젝트를 유지했는데, 이는 전년(1725건)보다 5% 넘게 불어난 수치다. 특히 독일로부터 유치한 프로젝트 수가 272개에 달했다. 이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기업들의 정반대 움직임은 내수·순수출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양국의 경제성장률 차이도 벌려놓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는 0.8% 성장해 EU 평균(0.5%)을 웃돌았다. 그러나 독일은 -0.3%로 역성장했다. EU에서 마이너스를 나타낸 국가는 독일이 유일하다. 프랑스는 2021년부터 3년 연속 경제성장률에서 독일을 앞섰다.

이런 배경에는 20여 년 전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두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경제성에 중점을 둔 에너지정책을 쓰면서 에너지 비용 등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고 경쟁력을 키워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독일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전체 경제 규모 중 에너지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제조업 비율이 20%가량(2020년 기준)으로 프랑스(약 10%)보다 2배인 점은 문제를 부채질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에너지 가격은 기업들의 생산 단가에 10% 넘게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선 2000년 중도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은 안전성이 떨어진다”며 ‘탈원자력발전(이하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속력을 붙였고, 지난해 4월 15일 독일 내 모든 원전이 가동을 멈췄다.

원전의 빈자리는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채워나가겠다는 게 독일 정부의 방침이다. 현재 독일 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0%를 웃돈다. 이를 통해 발전 과정에서의 안전성을 높일 순 있겠지만, 생산 비용이 높아진다는 게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생산단가는 원전보다 4배가량 비싸다. 촘촘하게 깔아야 하는 전력망 구축 비용이 커서다.

반면 같은 기간 프랑스는 원전의 안전성 우려가 과장됐다는 판단에 따라 대체적으로 ‘친원자력발전(이하 친원전)’ 정책을 이어왔다. 현재 프랑스 발전량 중 70% 정도가 저렴한 원전에서 나온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2001년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66.3원/㎾h)은 프랑스(52.5원/㎾h)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21년엔 독일(212.9원/㎾h)이 프랑스(143.1원/㎾h)보다 50%가량 높아졌다고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분석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부터는 독일의 전기요금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한국전력이 OECD의 에너지 자문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를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2022년 산업용 전기요금은 전년보다 30%가량 오른 281.8원/㎾h(1달러당 1385원 기준)를 기록하며 프랑스(187.3원/㎾h)를 크게 앞섰다.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들여올 길이 막힌 탓이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를 메인 에너지로 삼기 위해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백업 연료로 상당한 비중을 둬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 등에 따라 공급 안정성(安定性)이 떨어져서다. 축출 대상인 원전을 백업 연료로 삼을 순 없다.

전쟁을 계기로 추가적인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독일 제조업 등의 생산단가가 더 높아졌다. 독일 철강기업 잘츠기터의 최고경영자(CEO) 군나르 그로블러는 지난해 11월 파이낸셜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높은 에너지 가격 때문에 독일이 제조업 가치사슬을 통째로 잃을 위기”라고 하소연했다. 이현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프랑스가 전쟁으로 받은 타격은 독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았다”고 했다.

이밖에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교육·노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한 덕분에 FDI를 대거 유치하고, 독일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지난해 9월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은 독일이 몹시 그리워하는 발전을 가져왔다”는 내용의 칼럼을 보도했다.

이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프랑스처럼 친원전 정책에 적극적인 추세다. 지난해 12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한국을 포함한 22개국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 에너지 발전 용량을 2020년 대비 3배로 늘리기 위해 협력하자고 합의했다. 그렇다고 친원전 국가들이 원전에 ‘올인’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투자도 병행하면서 2021년말 현재 관련 발전 비중이 10%가량에 달한다.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특정 에너지원을 두고 과격하게 배제하거나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는 게 교훈”이라며 “독일과 달리 한국은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아 탈원전 정책을 쓰다가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더욱 경제적으로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