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내 사명은 근대사 극복, 10년 더 글쓰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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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황석영은 17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근대 한국 문학이 다루지 않은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철도원 삼대』를 소개했다. [연합뉴스]

황석영은 17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근대 한국 문학이 다루지 않은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철도원 삼대』를 소개했다. [연합뉴스]

“‘황석영은 근대의 극복과 수용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죽은 사람이다’ 이렇게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황석영(81)은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창비·2020년)가 2024년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것을 계기로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변화의 시기이고, 방향을 정해야 하는 때다. 어디로 갈지 정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근대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황석영이 부커상 최종 후보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소설 『해 질 무렵』으로 부커상 국제부문 1차 후보(13명)에 올랐으나 최종후보(6인)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그는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부담스럽지만 받으면 좋겠다”며 “중간에 망명하고 징역 가면서 10여 년을 허송세월했다. (그래서) 10년 더 활동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황석영은 19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이후 귀국하지 못한 채 해외를 떠돌았다. 1993년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살이를 했다.

『철도원 삼대』는 2019년 ‘마터 2-10’이라는 제목으로 채널예스에 연재된 뒤 2020년 단행본으로 창비에서 출간됐다. 소설은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의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노동자의 삶을 핍진하게 그렸다. 황석영은 1989년 방북 당시 한 노인과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노인의 아버지는 영등포 철도공작창에서 일했고, 노인 역시 일제강점기 때 중국 본토와 한반도를 넘나들며 기관차를 몰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영등포는 황석영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영문판 제목이기도 한 ‘마터 2-10’은 일제강점기 때 운행을 시작해 한국전쟁 때 폭파된 산악형 기관차의 이름이다. 그는 “한국전쟁 때 평양을 왔다 갔다 하며 군수 물자를 나르다가 철원 근방에서 폭파됐다. 철도 노동자 삼대를 다루는데 아주 적합한 제목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정의하는 단어로 ‘민담 리얼리즘’을 꼽았다. “민담은 가감승제(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로 쓰인 역사의 전 단계로, 민중의 일상이 쌓여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설명과 함께다.

향후 계획에 대해선 “부커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영국에 갔다 온 후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연변 15만원 탈취사건’을 홍범도 장군과 엮어서 다룬 작품과, 동학 제2대 교주인 최시형의 35년간 도피 생활을 다룬 소설을 집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황석영이 올해 최종후보에 오르며 2022년 정보라 『저주토끼』, 지난해 천명관 『고래』에 이어 한국 작가의 작품이 3년 연속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게 됐다. 부커상 국제부문 수상작은 다음 달 21일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최종 수상 작가와 번역가는 총 5만 파운드(약 8608만원)의 상금을 절반씩 나눠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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