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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물가상승 주범 美와 다르다"…고금리 장기화에 커지는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 연기를 시사하면서, 한국도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금리 영향이 덜한 분야가 물가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어, 고금리가 물가는 못 잡고 경제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가 반등 韓이 美보다 크지만…근원은 낮아

17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7월(2.4%) 저점을 찍고 지난달(3.1%)까지 0.7%포인트 다시 올랐다.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6월(3%) 저점을 기록한 이후 지난달(3.5%)까지 0.5%포인트 상승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전체 물가의 재반등 폭은 미국보다 한국이 높지만 반등 양상은 다르다. 한국은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지난달 2.4%로 2월(2.5%)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미국 근원 물가는 3.8%로 동일하게 유지됐다. 전체 물가가 반등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근원 물가 하락세가 유지됐지만, 미국은 함께 상승한 것이다.

품목별 물가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한국에서 물가 상승세(전년 동월 대비)가 5% 넘게 유지된 품목은 농산물(21.1%)·도시가스(6.4%)·석유제품(5.7%)이었다. 농산물과 도시가스는 에너지와 식료품에 해당하고, 석유제품은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받는 품목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은 교통(10.7%)‧집세(5.7%)‧수도(5.3%) 등 서비스 품목의 물가 상승세가 5%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처방, 한국은 답 아닐 수 있어

에너지와 식료품의 가격은 공급 등 외부 요인으로 주로 결정되기 때문에 금리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 최근 한국의 물가 재반등도 금리 요인보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와 사과 같은 농산물 가격 상승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금리 영향을 받는 서비스 물가는 미국의 오름세가 더 컸다. 한은은 최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견조한 경기상황 및 더딘 집세 둔화, 높은 임금 압력 지속 등으로 서비스 물가 흐름이 경직적인(sticky) 모습”이라며 “반면 한국은 노동 시장의 물가 압력이 미국에 비해 약한 데다 최근 소비 부진도 근원 물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 때문에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작한 고금리 처방도 한국과 미국이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금리 영향을 받는 서비스를 중심으로 물가 반등을 하고 있는 만큼, 고금리를 당분간 더 이어가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실제 미국의 높은 물가 상승률의 배경 중 하나인 주거비도 한국보다 금리 영향을 상대적으로 늦게 받는 편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주택 관련 대출에서 고정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를 올린다고 즉각적으로 주거비 부담으로 연결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한국은 금리 영향이 덜한 에너지와 식료품에서 물가 상승세가 두드러진 만큼, 적어도 물가 때문에 높은 금리를 고수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후변화 영향에 사과 가격이 높은데, 이것을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고 토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고금리 따르다 경기 침체 우려 

하지만, 이미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이로 인한 환율 불안 우려 때문에 미국이 기준금리 내리지 않는 이상 한국도 금리를 못 내리거나 강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결국 미국이 통화정책 전환에 나서지 않으면, 한국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더라도 고금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이미 근원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힌 상황이기 때문에 물가 때문에 금리를 못 내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면서 “원화 가치 하락 문제도 고려는 해야 하지만, 너무 늦은 금리 인하가 경기 침체 등을 유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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