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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 여사 별세…아들·남편 곁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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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91) 여사. 사진 박종철기념사업회

17일 오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91) 여사. 사진 박종철기념사업회

고(故)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 여사가 17일 별세했다. 91세.

유족에 따르면 정씨는 이날 오전 5시쯤 서울 강동구 소재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1987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둘째 아들 박종철 열사를 스물둘의 나이로 떠나보냈다. 이후 민주화 운동과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에 30년 넘게 헌신한 남편 고(故) 박정기씨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지원군이었다.

박 열사의 형 종부씨는 “아버님께서 30여년간 민주화 운동에 힘쓰셨다면 어머니께서는 묵묵히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먼저 간 아들을 보는 양 손주 두 명을 돌보느라 30년 세월을 다 쓰셨다”며 “가족들은 그것으로 어머님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평소 박 열사에 대해 언급을 가급적 피했다고 한다. 종부씨는 “어머니께서는 평소 자신이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속으로만 다 삭이시곤 했다”며 “그렇게 늘 웃기만 하던 어머님께서는 떠나실 때도 별말씀 없이 웃으셨다. 아마 아들 곁으로 간다고 생각하셔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그리던 아들 곁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했다.

부산 출신인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다음 날 숨졌다. 경찰은 수사 결과 박 열사 사인이 심장마비라며 “책상을 세게 ‘탁’하고 두드리니 (박 열사가)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고 발표해 공분을 샀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 운동이 그해 6·10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박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등에서 활동하며 2018년까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2018년 7월 89세 나이로 별세했다. 정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부산 자택에서 홀로 지내다 건강이 악화하며 2019년부터 서울의 요양병원에 머물렀다고 한다.

정씨 빈소는 서울강동성심병원에 차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들 종부씨, 딸 은숙씨 등이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정씨는 서울시립승화원을 거친 뒤 아들과 남편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민주 열사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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