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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인전문검사 벨트가 전관예우 자격증처럼 악용돼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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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3년 11월 열린 제1차 공인전문검사인증심사위원회 회의. 김경수 당시 대전고검장(왼쪽에서 네번째)이 위원장을 지냈고, 한동훈 당시 대검 정책기획과장(오른쪽 두번째)도 회의에 참여했다. 사진 대검찰청

2013년 11월 열린 제1차 공인전문검사인증심사위원회 회의. 김경수 당시 대전고검장(왼쪽에서 네번째)이 위원장을 지냈고, 한동훈 당시 대검 정책기획과장(오른쪽 두번째)도 회의에 참여했다. 사진 대검찰청

이종근 거액 수임료로 불거진 다단계 비호 논란

제도 보완 미루면 성폭력·마약 분야도 만연할 듯

이번 총선을 전후로 검찰의 공인전문검사 제도가 논란을 일으켰다. 다단계 수사 분야 1급(블랙벨트) 출신인 이종근 변호사가 검사장 퇴임 직후인 지난해 5월 이후 부부 신고 재산이 41억원 증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 변호사는 조국혁신당 박은정 당선인의 남편이다. 이 변호사처럼 공인전문검사 출신 변호사가 해당 분야 범죄자 사건을 수임하는 사례가 만연한 사실이 중앙일보 취재로 드러났다.

성범죄 분야의 2급(블루벨트) 출신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성착취물을 만든 범죄자를 변호해 집행유예를 받도록 도와줬다니 말문이 막힌다. 관세 블루벨트 변호사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총 159㎏(약 72억원 상당)의 금괴를 밀수한 피고인의 집행유예를 받아낸 사례는 또 어떤가. 검찰이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들여 쌓아 올린 수사 노하우를 밖으로 들고 나가 거꾸로 범죄 조직을 위해 활용한다면 심각한 수사 방해가 아닐 수 없다. 전관 출신이 전문성 벨트까지 찼으니 거액의 대가를 받는 건 상식이다.

박은정 당선인은 후보 시절 남편의 고액 수임 논란에 대해 “(수임 건수가) 160건이기 때문에 전관으로 한다면 160억원을 벌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관 출신 변호사의 통상 수임료가 한 건당 1억원이라고 밝힌 셈이다. 박 당선인도 검사 출신이니 허튼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전관예우의 관행은 법조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지난 15일엔 금융감독원 국장이 금감원 출신 인사에게 내부 정보를 빼돌린 혐의가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아파트 안전 문제가 건설업계에 뿌리 깊은 LH 전관 출신들의 카르텔 탓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비리를 척결해야 할 검찰에서 만든 공인전문검사 제도가 오히려 전관의 관행을 악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수사 전문성 향상을 위해 2013년 도입한 제도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11년간 배출한 289명 중 78명이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는 상황이 됐다. 검찰 내에서도 “벨트 제도가 전관예우 금지 제도를 비껴가는 일종의 틈새 구멍으로 기능하고 있다”(현직 검찰 간부)는 지적이 나온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가 전관예우 악습에 황금 벨트까지 덤으로 채워주는 결과로 변질할 소지가 다분하다.

우선적으론 공인전문검사 출신 스스로가 공직자로서의 윤리를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검찰에서 배운 기법을 거꾸로 수사를 방해하는 도구로 악용하는 행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개인의 양심에만 의존하기엔 법조계 전관예우의 뿌리는 너무 깊다. 대검은 공인전문검사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고려해 세밀한 보완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대비를 소홀히 하면 공인전문검사 벨트는 공인 전관예우 자격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