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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명당’ 찾다가 목숨 잃기도…제주 길잃음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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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지난달 29일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119에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이 구조대원과 수풀을 빠져 나가고 있다.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지난달 29일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119에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이 구조대원과 수풀을 빠져 나가고 있다.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지난 5일 오전 10시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한 들판에서 6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일 오후 8시쯤 배우자에게 “고사리를 따러 가겠다”며 집을 나선 후 실종상태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폐쇄회로(CC)TV와 드론 등을 이용해 숨진 A씨를 발견했다.

지난 8일에는 서귀포시 안덕면 남송이오름 인근에 고사리를 꺾으러 간 80대 B씨가 실종됐다가 이튿날 발견됐다. B씨는 스스로 오름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상점까지 찾아가 가족에게 연락해 구조됐다. B씨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모두 닳아 연락을 못 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일에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일대 숲에서 60대 여성 C씨가 “고사리를 꺾다 길을 잃었다”고 119에 신고해 구조됐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15일 “봄철을 맞아 지난달 29일부터 제주 전역에 길 잃음 안전사고주의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소방본부 집계 결과 최근 5년(2019~2023년) 간 제주도내 길 잃음 안전사고는 총 459건에 달했다. 제주에서만 한해 91.8건 꼴로 길 잃음 사고가 발생하면서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길 잃음 사고 중 41.4%(190건)가 고사리 채취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32.7%(150건)는 등산·오름 탐방 중 길 잃음 사고, 25.9%(119건)는 올레길·둘레길 탐방 중 길 잃음이었다. 길 잃음 사고 시기는 고사리 채취가 이뤄지는 3~5월에 58.6%가 발생했다.

제주도내 목장과 오름(작은화산체) 등지에는 매년 4월이 되면 오전 이른 시간부터 고사리 채취객이 몰려든다. 고사리는 최근 봄비를 맞으며 자란 게 가장 연하고 상품성이 좋다고 한다. 제주도민은 4~5월 비를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이때 따는 고사리는 잎이 아직 펴지기 전이어서 줄기 부분이 여리고 부드럽다.

제주도민이 채취한 고사리. 최충일 기자

제주도민이 채취한 고사리. 최충일 기자

소방당국에 따르면 고사리가 많은 ‘명당’을 찾는 것도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라고 한다. 혼자만 알고 싶은 명당을 찾다 길을 잃어 낭패를 보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명당은 딸이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특히 고사리는 제주 중산간(200~600m) 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땅 밑 고사리만 보고 걷다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단백질·칼슘·철분·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과거 ‘궐채(蕨菜)’라는 이름으로 임금께 진상했다. 수확 후 말렸다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제주산 건조 고사리는 소매가로 100g당 1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소방본부는 고사리철 길 잃음 사고가 자주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119구조견을 전진 배치했다. 또 고사리 채취객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길 잃음 대처키트 보관함을 설치했다. 대처키트 보관함에는 길을 잃었을 때 대처 방법을 적은 리플릿과 호루라기, 담요, 포도당 캔디, 야광스틱 등이 담겼다. 고민자 제주도소방안전본부장은 “고사리 채취 시 길을 잘 아는 일행과 동행해야 하고, 휴대전화와 호각 등을 휴대해야 한다”며 “길을 잃었을 때는 119에 신고한 후 신고지점에서 기다려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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