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준봉의 시선

문학 한류는 오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총선처럼 화끈하지는 않지만 요즘 기꺼이 몰입하는 분야가 있다. 자고 나면 국내 작가의 해외 문학상 수상 관련 소식이 전해진다.

알려진 대로 중견 시인 김혜순이 지난달 영문 번역시집 『팬텀 페인 윙스(Phantom Pain Wings·날개 환상통)』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 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하인즈 인수 펭클에 따르면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상은 아니다. 현지 시집 판매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미국은 500부만 팔리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시집에 대해 관심 없기로 악명 높은 나라다. 도서관 사서들이 새 책을 구입할 때 수상 사실을 참고하기 때문에 미국 도서관에 깔릴 가능성은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업성에 물든 출판계와 달리 뉴욕타임스 등 매체에 글을 쓰는 도서비평가들이 문학적 잣대만으로 판정한 결과여서 상징성이 크다고 했다. 문체부 장관이 축전까지 보냈어야 할 쾌거인지는 모르겠으나 축하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김혜순 시 황석영 소설 잇단 낭보
90년대에도 한국문학 반짝 주목
자국 한계 벗은 보편문학 나와야

지난 9일에는 황석영의 만년 역작 『철도원 삼대』(2020년)가 영국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 지난해 천명관의 『고래』에 이어 올해 『철도원 삼대』까지, 한국문학에 대한 부커상 측의 갑작스러운 열의가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소식.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2016년 이 상 수상을 발판으로 2022년 기준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가 팔렸다.

10일에는 내용 달달해 K-힐링 소설로 통하는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에 선정됐다. 문학상 수상이 책 판매를 끌어올리는 신뢰 관계가 희박한 한국과 달리, 서점대상은 철저하게 상업적 관점에서 제정한 상이라 판매 효과가 크다고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상 뽑아 놓은 일본 서점인들이 열심히 마케팅한다는 얘기다.

요약하면 한국문학은 요즘 적어도 해외에서 잘 나간다. ‘해외에서’라고 토 단 이유는 국내 사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어서다. 어쨌든 문학 한류가 가시권이라고 주장해도 허황하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문학 자체의 저력 때문인지, 팝·영화·음식 등 한류의 영향인지, 삼성·현대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 모두 때문인지는 정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러다가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고, 문학의 세계시민권까지 획득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문학의 존재감을 누구나 인정해주는 상황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과거를 돌아보자. 꼭 31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 작가를 잡아라, 유럽 출판계 전속계약 붐’.

1993년 3월 8일 자 중앙일보 13면 3단 박스 기사 제목이다. 당시 사정은 문학평론가 정과리(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씨가 잘 안다.

90년대 들어 고도성장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문학도 알리고 싶다는 한국인들의 열망이 싹텄다. 마침 이문열의 중편 『금시조』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 극찬이 쏟아졌다. 이후 “거대 지원사업”들이 출범했다. 93년 대산재단, 96년 한국문학번역금고(현 한국문학번역원)가 각각 설립됐다. 한국문학을 번역 출판하는 해외 출판사에 지원금을 주기 시작했다. 기사가 전하는 당시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 뜨겁다. 프랑스·이탈리아의 유력 출판사들이 문학성·대중성 겸비한 한국 작가 잡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니.

지금 눈앞의 현상이 어떤 의미인지는 가령 30년 후에 분명해질 것이다. 진정한 문학 한류의 출발점이거나 아니면 31년 전의 반복이거나.

정과리씨는 비관적이다. 30년 전 열기가 식은 지 오래라는 것이다. 한국문학 자체,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은 게 실패 요인이다. 지금 열기도 일회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요즘 한국소설은 2030 여성이 주 독자층이어서 그들 입맛에 맞는 작품이 많이 쓰인다. 상품이 다양하지 않은데 꾸준히 팔릴 리 없다는 시각이다.

윤상인 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보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국의 역사나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아야 보편문학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본의 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보편문학이 아니었다. 지극히 일본적이었다. 94년 노벨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는 보편문학을 했다. 모든 작품에 걸쳐 권력의 억압, 대중의 타락 가능성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이쯤에서 묻게 된다. 우리에게 그런 보편문학이 많나. 현재 쓰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