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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리 한번 내리기 힘드네…CPI 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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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리 잣대’ CPI 3.5% 상승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오름세를 이어갔다. 경기 호조에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커지면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불투명해지는 모양새다.

10일(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밝혔다. 시장 전망치(3.4%)와 전월(3.2%) 수치를 모두 상회했다.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주거비와 휘발유 가격이 물가상승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대비 3.8% 올라 전월(3.8%)과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올해 들어 물가가 3%를 웃돌며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는 요소다. Fed 인사들은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까지 지속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인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4일 “물가상승률이 계속 횡보한다면 금리 인하가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들 것”이라는 입장까지 내놨다. 미국의 경제가 여전히 강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5일 미 노동부는 지난달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가 전월 대비 30만3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전망치(21만4000명)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고금리에도 탄탄한 고용시장은 가계 소비력을 뒷받침해 향후 물가 상승세를 고착화할 수 있다. 최근 상승세를 탄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이에 따라 6월 첫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도 조금씩 후퇴하는 형국이다. 앞서 블룸버그는 “Fed의 첫 금리 인하 시기로 9월을 예상하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며 “연내 3회 인하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불확실해 지면서, 글로벌 긴축 정책 ‘피벗(Pivot·전환)’ 일정도 꼬이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통화 정책과 별도로 기준금리를 먼저 내리거나 올리는 ‘각자도생’을 선택한다. Fed의 피벗 시점만 바라보고 있는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는 분석이다.

10일 유럽연합(EU) 통계당국인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지난달 유로존 CPI는 전년 대비 2.4% 올랐다. 시장 예상치(2.6%)는 물론 최근 4개월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예상 밖으로 떨어진 CPI 상승률은 유로존의 6월 첫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였다. 영국도 유로존과 마찬가지다. 영란은행(BOE)은 최근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했지만, 전 분기 대비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0.3%)이 지난 3분기(-0.1%)에 이어 또 역성장하면서 6월에는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은행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만 기다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달리 오랜 고금리와 고물가로 경기둔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빠른 기준금리 인하를 바라는 배경이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고금리 국면을 더 이어갈 경우 금융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도 “미국과 우리 금리정책이 기계적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경우 달러 대비 원화 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린다면, 일시적으로 환율 등에 충격이 올 순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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