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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 밖 기웃…만만치 않은 사상 통제|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한의 90년 문화 및 예술은 외래사조 침투에 대한 경계 및 활발한 대남 접촉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전개됐다.
외래사조 경계는 북한이 문화예술분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선전수단으로 삼고있는 영화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영화부문의 특징으로는 체제 옹호적인 내용의 영화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다.
북한은 금년 들어 1월에서 10월말까지 모두 35편의 극영화와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기록영화는 김일성 김정일의 업적이 중심인 만큼 다분히 체제 옹호적이다.
이들 35편 영화는 극영화 13편·기록영화 22편으로 기록영화의 수가 극영화에 비해 이례적으로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전해의 기록영화제작은 9편으로 극영화 17편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 같은 이례적 제작태도는 외래사조 유입가능성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영화 22편 가운데 50%가 넘는 12편이 체제 찬양적 성격을 띠고 있어 지난해의 3편보다 월등히 많았다.
대표적인 영화로는『사회주의 길을 따라』『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살며 투쟁한다』등.
기록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난 9월 개봉된『일제의 조선총독통치』같은 반일의식을 고취하는 영화가 3편 나왔다는 점이다.
북일 수교 교섭이 진행되면서 북한언론들이 반일에 대해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통일을 앞세운 문화계의 대남 접촉은 90년 하반기에 들어와 두드러지게 보인다.
지난8월 오사카에서 열린 조선학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은 10여 명에 이르는 전례 없는 다수의 학자를 보내 이들이 3백여 명의 남측 학자들과 만남으로써 해방 이후 최단시일 내에 최대한으로 접촉한 기록을 남겼다. 이를 통해 북한학자들은 단절된 상태에서 제한적으로만 접할 수 있던 남측의 학문적 성과를 직접 대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또 10월에는 뉴욕에서 남북영화제가 열려 북한의 영화인들이 남측의 영화수준·영화의 주제 등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어 11월과 12월에는「통일음악제」「송년음악회」등이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열려 남북음악인들이 교류의 장을 열었다.
북한이 이같이 문화부문에서 대남 접촉에 활발히 나서게된 것은 통일열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학·음악·미술·연극 등을 포함한 기타 예술부문에서는 주목할만한 새로운 흐름이나 특이한 변화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은 채「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모토로 한 주체예술」이라는 북한 특유의 예술론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미술부문에서는 노동자의 삶,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해 진군하는 인민들의 모습이 주로 화폭에 담겼다.
그러나 지난해의 평축에 이어 지난 8월의 범민족대회와 남북대화 등 통일분위기와 맞물려 통일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평축에 단독 참가, 북한주민의 열광적 인기를 모아「통일의 꽃」으로까지 불렸던 임수경양이 다시 주목돼 90년 북한화단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음악에도 통일분위기가 유입돼『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가 전 주민의 노래가 될 정도로 북에서 인기가요로 등장했고『통일의 길』이라는 남북합작노래도 등장했다.
음악부문에서 또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비정치적 내용의 노래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올해『휘파람』『축배를 들자』『축복하노라』등 서정성을 곁들인 새로운 인기가요가 등장했다.
『휘파람』은 가사 중에「복순이네 집 앞을 지날 때 이 가슴 설레요.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 휘파람 물었네」라는 구절이 있고『축배를 들자』는「신랑 신부 웃음꽃이 활짝 폈으니 첫아기는 틀림없이 옥동자라네」라는 노랫말이 담긴 북한식 사랑노래다.
이 같은 노래는 사회 전체적으로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북한사회에서 주민정서를 중시하는 새로운 추세를 보여준다.
학문분야 가운데는 사학·고고학의 유물출토부분에서 성과가 엿보인다.
고대유물이 7군데서 발굴됐고 고조선·고구려·고려시대의 유물·유적들은 평양과 황해남도 신원군·개성 등지에서 다수 발굴됐다.
『조선조실록』번역본이 나온 것도 학문적 성과로 꼽힌다. 조선조실록 번역은 지난 76년부터 추진됐고 90년에만 전4백 권 가운데 3백60권이 출간됐다.
최초로 번역된 조선조실록은 앞으로 남북사학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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