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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라 민증도 받았는데 '한국인 아니다'…대법 “취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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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한국에서 나고 자라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고’ 살다가 성인이 된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해 ‘한국 국적이 없다’고 하는 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다문화가정 자녀 2명이 ‘국적 비보유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 다시 심리를 받게 된다.

나고 자라 성인됐더니…‘한국 국적 없다’

원고들은 한국인 남성과 중국인 여성 사이에서 각각 1998년, 2000년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도 했고 주민등록번호도 받았다. 2008년 부모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면서 원고들이 태어날 때 했던 출생신고는 ‘외국인 모에게서 난 혼외자 출생신고’라는 이유로 말소됐고 대신 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중국 국적 자녀’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어머니는 귀화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이들은 이후로도 한국에서 별 일 없이 컸다. 17세가 됐을 땐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대학 진학도 했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는 국가장학금도 받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국적 보유 판정을 해달라’며 법무부에 신청을 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법무부가 ‘국적비보유’ 판정, 즉 이들에게 ‘한국 국적이 없다’는 통지를 한 것이다.

현행 국적법 2조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인이면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얻게 되지만, 이들이 태어날 때 한국인 아버지가 혼인신고 전이라 법률상 친자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적법 3조에 따라 미성년자일 때 한국인 부모가 인지 신고를 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지만 법무부에서 몇 차례 안내했으나 이들의 부모가 절차를 밟지 않아 국적 취득을 하지 않은 채 성년이 됐다. 성년이 된 뒤엔 별도로 귀화 신청을 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는데 미성년자의 국적 취득 절차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주민등록증도 내줘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다” 주장

2019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한 귀화 허가자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증서를 받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한 귀화 허가자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증서를 받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부, 주민등록증 등 한국 국적을 가진 것처럼 국가가 공적 견해 표명을 해왔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당연히 믿어 성년이 되기 전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며 국적 비보유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고 국적 비보유 판정을 취소하라고 했다. 한국 국적이 있는 것으로 믿게 한 국가 잘못도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행정법원은 “공무원들이 원고들의 국적에 관한 법률적 판단을 그르쳐 ‘대한민국 국민’임을 전제로 다양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왔고, 원고들이 적법하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믿은 데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적도 없어 ‘국적 비보유’ 판정으로 국적 보유 여부가 달라지지 않고, 행정청의 귀책도 없다”며 “법무부에서 국적취득 절차를 안내했지만 따르지 않은 부모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다시 ‘국가 책임도 있다’고 원심을 파기했다. 부모의 과실이 있지만, 원고들은 주민등록증이 나오면서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정당하게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고들은 평생 보유했다고 여긴 대한민국 국적이 부인되고, 특별귀화 등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을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됐으며, 자신들이 출생하고 성장한 대한민국에 체류할 자격부터 변경되는 등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며 원고들이 침해받는 이익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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