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금강역사와 헤라클레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석굴암 주실 입구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금강역사상은 동양적인 감각을 띤 보살상들과는 달리 우락부락한 모습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수호신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바즈라파니(vajrapani)’인 금강역사는 번개, 혹은 금강저(vajra)를 손에 쥔 자라는 뜻이다. 초기 대승불교에 등장하는 이 보살은 육체적인 강인함을 부각하고 악을 쫓아내는 무서운 모습이 특징이다. 그러기에 2000년 전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발달한 간다라 불교미술의 유적에서 보이는 바즈라파니상이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 모습을 차용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하다. 간다라 미술의 바즈라파니는 가끔 헤라클레스처럼 사자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몽둥이를 든, 그리고 육체미를 자랑하는 나신으로 석가모니를 동반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센 남성상인 헤라클레스는 맨손으로 죽인 불멸의 네메아 사자를 갑옷으로 삼고 아폴로 신과의 대결에서도 지지 않는다. 반인반신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신과 인간의 사이를 연결하는 보살과 관념적으로도 상통한다.

아메리카 편지

아메리카 편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간다라 불교미술을 매개로 헤라클레스 모티브가 중국 당나라까지 전파됐다는 사실이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발굴된 당삼채 도기상 중에도 영락없이 헤라클레스 모습을 한 전사가 보인다(사진). 그리고 이는 청나라 어린이들이 즐겨 쓰던 ‘호랑이 모자’까지 이어진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고 중국 민속 문화의 한 양상이 서양 고전 문화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간다라 미술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우세한 문화가 열세한 문화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견해다. 초기 불교는 그 당시 공존했던 서양문화뿐 아니라 힌두교나 자이나교의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흡수했고, 동방으로 전파되면서 유교·도교·신토이즘 등의 토착신앙과 결합하며 발전한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