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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과 밀착하는 몰디브·호주…美 해상 포위망 균열 부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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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태평양 제해권을 두고 다퉈왔던 미국과 중국이 인도양으로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이 몰디브·호주와 잇따라 손잡으며 인도양에 손을 뻗자, 미국은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쿼드(QUAD, 미국·호주·일본·인도) 등 동맹을 동원해 ‘중국 몰아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도양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중국과 미국을 대만을 두고 무력 충돌을 벌인다면 인도양을 쥐고 있는 쪽이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모하메드 무이주 몰디브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모하메드 무이주 몰디브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양에 10년 이상 공들인 중국

중국은 지난달 인도양의 몰디브와 군사협력을 체결했다. 인구 40만 명의 섬나라 몰디브는 중동-아프리카-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인도양 항로에 있는 요충지다. 육지 면적은 300㎢에 불과하지만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90만㎢가 넘는 ‘해양 대국’으로, 인도양의 전진기지로도 불린다.

이미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사업을 통해 몰디브에 항구·항만 등을 건설했다. 때문에 이번 군사협정을 통해 상업용인 이 시설을 언제든 군사기지로 전환하는 게 가능해졌다. 만약 실제로 군사기지로 전환하면, 중국은 2017년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구축한 기지에 이어 인도양 한복판에 두 번째 해외 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중국은 몰디브에 10년 이상 공을 들여왔다. 지난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지도자 최초로 몰디브를 직접 방문했다. 시 주석은 당시 “작은 나라라고 위상이 작은 게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올해 첫 정상회담 상대도 모하메디 무이주 몰디브 대통령이었다.

몰디브의 수도 말레의 한 항구에 범선이 정박해있다. AFP=연합뉴스

몰디브의 수도 말레의 한 항구에 범선이 정박해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은 호주에도 접근하고 있다. 호주는 인도양에서 가장 넓은 EEZ(640만㎢)를 보유한 나라로, EEZ 면적이 인도(163만㎢)의 4배에 달한다. 2차 대전 당시 서부 항구도시 프리맨틀에 잠수함 기지를 개설한 이후, 호주는 인도양의 최강국으로 군림해왔다. 호주와 중국 관계는 2020년 이후 크게 악화했다. 호주가 중국에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하고, 반발한 중국이 와인 등 호주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이후 호주는 쿼드는 물론 미국 중심의 방위협정인 오커스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인도양에서 중국의 군사 확장을 저지하는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2022년 대(對)중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앨버니지 총리는 같은 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6년 만에 열린 양국 정상회담이었다. 지난해 11월엔 호주 총리로선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재회했다.

지난달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호주를 방문해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을 만났다. 양국은 경제 등 교류협력을 늘리는 한편 해양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가자고 합의했다. 이후 중국은 호주 와인에 최대 218%까지 부과했던 반덤핑·반보조금 관세를 3년 만에 철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달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호주의 행보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되, 미국 주도의 안보 협의체 가입은 유지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실리외교 노선이란 풀이가 나온다. 하지만 중국과 호주의 밀착이 안보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인도 일간지 데칸헤럴드는 “중국은 호주를 미국 동맹 체제에서 떼놓고 싶어한다”면서 “중국은 호주 경제의 중국 의존도와 취약성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라 지적했다.

“대만 침공 발발 시, 인도양 주인이 승자”

중국이 인도양에 공들이는 건 대만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의 에너지 수입량 중 약 80%(석유 62%, 천연가스 17%)가 인도양의 말라카해협을 거쳐 이동된다. 중국에서 동물 사료로 사용되는 대두도 인도양을 통해 운송된다.

로이터통신은 분쟁 발발 시 미국과 동맹국이 말라카해협을 봉쇄하는 것만으로 중국을 에너지·식량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전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침공이 현실화된다면 인도양, 말라카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쥔 쪽이 승리할 것이란 뜻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현재 인도양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인도양을 지키는 미 해군의 제5 함대는 바레인에 주둔해있다. 몰디브 남쪽 약 500㎞ 거리의 디에고가르시아 섬에는 제5 함대 산하 비행장도 있다. 3.7㎞ 콘크리트 활주로가 마련된 이곳엔 미 공군의 B-52 전략 폭격기, B-1B 초음속 전략 폭격기가 배치된 상태다.

세계 최강급 전력인 미 해군 제7함대도 인도양 방어에 동원된다. 여기에다 미 해군은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막기 위해 1973년 해체했던 제1 함대를 부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의 인도양 내 전용 군사기지는 지부티 한곳 뿐이다. 그런데 지부티 기지엔 비행장이 없다. 게다가 인근에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7개국의 군사 시설이 있다. 중국이 해군을 배치하더라도 공군의 엄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데이비드 브루스터 호주국립대 교수는 로이터에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면 인도양 내 중국 유조선이나 해군 함정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200만 배럴의 석유를 운반하는 중국 유조선은 격침되거나 전리품으로 나포될 게 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미‧중 인도양 격전, 동남아도 합종연횡

중국은 말라카해협 인근의 동남아 국가에도 접근하고 있다. 지난 1일엔 중국 군함이 캄보디아 남부 군항 레암 해군기지에 입항하는 모습이 잇따라 포착됐다. 레암 기지는 말라카해협 인근에 있다. 중국이 레암에 군사기지를 구축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지만, 중국과 캄보디아 모두 부인했다.

같은 날 시 주석은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인을 베이징에 초청해 해양 안보 유지를 위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중 갈등 속에 비동맹·균형외교 노선을 견지했던 인도네시아까지 포섭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해상 포위망을 강화하기 위해 동맹을 총동원하고 있다. 태평양에선 오커스와 쿼드 체계를 구축한 데 이어 일본·필리핀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은 말라카해협 인근에 있어 미국이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막는 데 도움될 수 있다고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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