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중 군사력 격차 갈수록 줄어...10~20년뒤 더 치열해질 것" [중앙포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한국 대외전략의 핵심 변수 중 하나다. 미중 경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응 전략을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F=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한국 대외전략의 핵심 변수 중 하나다. 미중 경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대응 전략을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F=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모든 전장에서 쉴 틈 없이 총탄이 오가는 고강도의 장기전 양상이다. 일시적인 해빙기가 조성될 순 있지만, 본질은 둘 중 하나가 완전히 패배해야 끝나는 ‘데스 게임’에 가깝다.

중앙일보가 오는 29일 열리는 ‘2023 중앙포럼-미·중 패권경쟁 시대 : 한국 경제의 활로는’을 앞두고 국제관계·경제·산업 분야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심층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미·중 경쟁은 향후 ‘구조적 갈등의 고착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군사력 ▶글로벌리더십 ▶경제력 ▶첨단기술 ▶공급망 등 5개 분야에서 벌어지는 미·중 경쟁의 강도를 각각 현재-단기-중·장기 등 시기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다.

전문가 30인의 미·중 경쟁 전망은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자문단은 분야별·시기별 미·중 경쟁의 강도를 0~10점(0점은 갈등이 존재하지 않음, 10점은 구조적 갈등이 고착화해 완화가 사실상 불가능) 척도로 평가했다. 5개 분야 모두 시간이 흐를수록 미·중 갈등 지수가 높아졌다. 특히 군사력 경쟁의 경우 응답한 전문가 28명이 현재의 갈등지수를 6.0점으로 평가했는데, 이는 중·장기적으로 7.5점까지 치솟으며 5개 분야 중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지금의 미·중 경쟁은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치열한 양상인데, 결국 이런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군사 경쟁력을 키우는 게 승리의 필수조건이라는 현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특히 군사력 분야에서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전망되는 가운데 갈등 격화 폭이 큰 것은 중국의 도전이 그만큼 거세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대만해협과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1도련선 내에서 미·중 간 군사력 격차가 축소되고 있고, 10~20년 뒤에는 차이가 더 줄어들며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이라는 얘기다.

성패 가를 승부처는 '첨단기술'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첨단기술 경쟁의 경우 전문가 29명의 갈등지수 변화 전망은 현재 7.0점에서 7.3점(단기)→7.8점(중·장기)으로 올랐다. 상승폭은 크지 않지만, 갈등의 강도 자체는 5개 분야 중 가장 높았다. 다른 분야의 갈등지수가 평균적으로 5~6점대였던 것에 비해 첨단기술 분야는 7.3점에 이르렀다.

이는 현재 양국 간 첨단기술 경쟁이 가장 뜨겁고, 중·장기적으로도 타협과 양보의 여지가 없는 각축장이 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중 간 표면적 협력관계가 형성돼도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중국의 시도와 미국의 견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실제 첨단기술 발전은 군사력, 공급망 문제와도 직결되는 만큼 결국 미·중 경쟁의 전 영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인공지능(AI)·반도체·양자컴퓨팅 등 3개의 핵심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 역시 기술 경쟁력을 곧 안보 경쟁력과 동일시한 결과다.

공급망은 경쟁 속 협력…배제 아닌 '상생'  

미국은 최근 중국을 봉쇄하고 견제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공급망 분야의 미중 경쟁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온건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은 지난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공동취재단

미국은 최근 중국을 봉쇄하고 견제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공급망 분야의 미중 경쟁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온건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은 지난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공동취재단

미·중 간 갈등 지수가 가장 낮은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평균 5.9점)이었다. 현재의 갈등지수(5.7점)는 물론 단기(6.0점)-중·장기(6.2점)적 관점에서도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온건한 경쟁이 이어질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이는 이미 상호의존도가 높은 미·중의 경제·산업 생태계 환경을 고려한 분석으로, 양국 모두 디커플링(decoupling) 등의 완벽한 배제보다는 ‘경쟁 속 상생’을 지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미국은 외형상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에 사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중국과의 교역량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미·중 교역액은 2021년 대비 5.0% 증가한 6906억 달러(약 898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이 5368억 달러(약 698조원)에 달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장비 수출 통제로 지금 당장은 중국이 첨단반도체 사업 진입에 어려움을 겪지만, 중국의 지속적인 기술 성장으로 결국 미국 역시 이같은 통제를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시 경쟁 판도 '지각변동' 

내년 11월 미 대선 결과는 미중 경쟁의 판도를 뒤흔들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내년 11월 미 대선 결과는 미중 경쟁의 판도를 뒤흔들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하지만 양국 간 경쟁의 판도를 흔들 주요 변수도 존재한다. 우선 미국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변수’가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급속도로 약해지고, 국제질서 역시 각자도생식으로 분절화할 것”(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같은 일방주의적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중국의 부상에 맞서 민주진영 중심의 헤게모니를 재구축하려는 미국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中 글로벌사우스 포섭, 美 중동 분쟁 조정 

지난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글로벌사우스 정상들과 대화하는 모습. APF=연합뉴스

지난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글로벌사우스 정상들과 대화하는 모습. APF=연합뉴스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는 글로벌 사우스(인도 등 남반구 중심의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선택’도 변수로 꼽힌다. 세계 각국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블록화하는 가운데 미·중 양국은 인도·브라질·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 등 글로벌 사우스를 포섭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 이어 글로벌 사우스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선 글로벌 리더십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점차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인사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 8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인사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 역시 미국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이를 틈타 중국은 중동 내에서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를 ‘부조리’로 규정하고 해결사를 자임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관련기사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중동 사태는 전쟁 발발의 임계점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여러 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미국의 제어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세계적으로 갈등 지역이 증폭될 경우 미국으로선 중국을 하나의 핵심 타깃으로 설정하려는 구도 자체가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중앙포럼 자문단 30인 명단 (가나다순)

▶김용준 성균관대 한중디지털연구소장(성균관대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김주호 KAIST 전산학과 교수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대림대 교수)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고려대 교수)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한양대 교수)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 ▶배경훈 LG AI연구원장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교수) ▶송승헌 맥킨지코리아 대표  ▶신윤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승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인교 전략물자관리원장(인하대 교수) ▶조재필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 ▶주재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