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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러∙중 안 가리고 테러…IS, 더 독해져서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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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줄 알았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가 돌아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번째 집권에 성공해 '21세기 차르'로 등극하자마자 IS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대형 테러로 일으키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올여름 파리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보안을 강화하는 등 전 세계가 다시 'IS 경보'가 발령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숨진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숨진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해 140명 넘게 숨지는 참극이 일어났다. 테러 직후 IS 측은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밝혔고, 처음엔 우크라이나를 범인으로 몰던 푸틴 대통령도 결국 "급진 이슬람주의자의 소행"이라고 인정했다.

모스크바 테러를 일으킨 건 IS의 분파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공격으로 IS와 그 지부가 중동은 물론 다른 지역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짚었다.

한때 영국 면적의 땅 지배…서아프리카·아프간에서 세력 규합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2000년대 초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알카에다의 한 분파로 활동하던 IS는 2010년대 초 시리아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세력을 키웠다. 중동과 유럽에서 잔인한 테러와 고문, 대량 학살, 그리고 인질·포로 처형을 담은 잔혹한 영상 유포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2014년 무렵부터는 시리아와 이라크를 점령하기 시작하며 이름대로 '국가'를 자처했다. IS는 한때 영국 면적의 지역을 통제할 만큼 위세가 강력했다. 테러도 이어갔다. 2015년 11월 1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 최소 359명이 사망한 2019년 스리랑카 테러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미국이 나섰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6월 IS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승인했고, 약 70개국이 참가한 미군 주도의 국제동맹군이 섬멸 작전을 펼쳤다. 지난한 싸움 끝에 2019년 초 국제동맹군이 IS의 마지막 영토를 탈환했고, 그해 10월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제거했다. 몰락한 IS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 백악관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 백악관

그러나 IS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IS 잔당들은 정국이 혼란스럽고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지역을 파고들었다. 나이지리아·니제르 등 서아프리카 국가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동남아시아 몇몇 나라에 숨어들어간 이들이 다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최근 WP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위원회의 보고서를 인용해 "IS는 더 많은 국가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유럽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더 향상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ISIS-K, 미군 떠난 아프간 발판 삼아
특히 강력한 분파로 서아프리카 지부와 함께 지난달 모스크바 테러를 일으킨 ISIS-K가 꼽힌다. ISIS-K는 I이란 북동쪽 일대의 옛 지명 '호라산'(Khorasan)에서 이름을 땄다. 뉴욕타임스(NYT)는 "2015년 파키스탄 탈레반(파슈툰인 중심)에 불만을 품고 조직된 ISIS-K(타지크인·우즈베크인)는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이곳을 발판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I2019년 이후 이라크에서 이탈한 IS 대원들이 대거 합류하기도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만 4000~6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탈레반과 싸우면서 세력을 키운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자살폭탄 테러(2021년), 카불 주재 러시아 대사관 테러(2022년)를 벌이는 등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지난 1월엔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도 노렸다. 미군이 암살한 이란 군부의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총사령관의 4주기 추모식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당시 10분 간격으로 폭탄이 2차례 터지면서 약 100명이 숨졌다. NYT는 "지난해 7월에도 독일 등 유럽에서 테러를 모의하던 ISIS-K 조직원들이 붙잡혔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혐의로 구금된 아민촌 이슬로모프. AFP=연합뉴스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혐의로 구금된 아민촌 이슬로모프. AFP=연합뉴스

ISIS-K의 지도자는 아프가니스탄군 출신 20대인 사나울라 가파리다. 정확한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무법 지대 발루치스탄에 은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파리는 중동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5개국, 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코카서스 국가들에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대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번 모스크바 테러범들도 중앙아시아의 빈국 타지키스탄 출신이다.

그렇다면 ISIS-K는 IS 중앙조직과 어떻게 다를까. '순수한 이슬람 국가'를 만든다는 이념, 테러 전술 등을 공유하고 있지만, 중앙조직과의 관계나 명령 체계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한때 IS 지부는 중앙조직으로부터 활동자금을 받았으나, 2019년 이후 IS의 핵심세력이 몰락하면 지부 차원에서 자금을 자체 조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IS가 '금융 허브'로 삼았던 튀르키예에서 감시가 심해져 자금 운송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IS 지부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광물 채굴업자, 마약 밀매업자, 일반 주민에게 '후원금' 등을 징수하거나, 직접 마약 밀매에 뛰어들기도 한다.

"전 세계가 우리 적"
현재 ISIS-K를 비롯한 IS 분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유럽 등 서방 뿐 아니라 러시아·중국·이란 모두를 '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IS를 "초국가적 위협"(월스트리트저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모스크바 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모스크바 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테러 대상이 된 러시아는 1990년대 말 체첸의 분리주의 운동을 강경 진압하며 무슬림을 잔인하게 탄압한 적 있다. 또한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는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이 IS를 몰아내는 데 열을 올린 바 있다.

미국 보안 컨설팅 업체 수판그룹은 "ISIS-K는 지난 2년간 특히 푸틴에 대한 비난 수위를 부쩍 높이며 러시아에 집착해왔다"고 전했다. 중국은 신장 자치구의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족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IS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인 IS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도  대립한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 IS와 싸웠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ISIS-K는 이번 모스크바 테러로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했다"며 "이들의 목표는 대규모 공격을 통해 전 세계의 관심을 끌면서 잠재적 '전사'들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보안을 부쩍 강화하는 등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들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NYT는 대테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파리 올림픽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기 매우 쉽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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