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아저씨'가 Z세대 롤모델 됐다…김창완 "날 왜 좋아하지?" [마흔공부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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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창완을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났다. 장진영 기자

가수 김창완을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났다. 장진영 기자

한 소절 흐를 때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꾹 참았어요. 행복했었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린 하나였어요.

23년간 진행한 라디오를 끝낸 소회를 묻자 김창완(70)은 이렇게 답했다. 매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위로를 건네던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SBS 파워FM, 이하 '아침창')'가 지난달 17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방송을 하던 날, 청취자들은 "나의 한 시절을 함께해줘 고맙다"며 각자의 추억을 꺼내 놓았다. 기타를 치며 흐느끼는 그의 모습도 SNS에서 오래 화제가 됐다.

김창완은 요새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한다. 음악도 삶도 머무르지 않고 사라져서 아름답다고 했다. 가수이자 배우로 쌓은 이력은 산처럼 큰데 그는 늘 초연하고 자유롭다.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자라지 않은 세대도 이런 탈권위에 열광한다. '마흔 공부' 시리즈, 세 번째 주인공은 이 시대 '좋은 어른'의 표상이 된 김창완이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마지막 방송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김창완. 사진 SBS Radio 에라오 유튜브 캡처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마지막 방송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김창완. 사진 SBS Radio 에라오 유튜브 캡처

✅Part 1. 존재가 위로, 당신은 김창완 아저씨  

'아침창' 방송이 없는 첫 월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딱 떠지더라고요. 그런데 갈 데가 있나. 매일 집(서울 서초구)에서 목동 SBS까지 자전거로 출근했는데, 오늘은 자전거 타기 싫었어요. 오토바이 타고 출근길 반대로 달렸지. 자전거로 매일 가던 길을 가면, 내내 방송 생각이 날 거 같았거든.
프로그램에 애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동안 오프닝 멘트도 직접 쓰셨잖아요. 어떻게 쓰신 건가요?  
무조건 (방송) 당일 아침에 썼어요. 그날의 느낌을 미리 쓸 수 없잖아요. 길가에 핀 개나리도 보여주고 싶고, 출근길 떠오른 생각도 말해주고 싶고, 아침을 그저 만나는 거지. 계획하지 않아요. 우리 삶에서 계획하느라 놓치는 게 얼마나 많아요. 우연히 만난 모든 것을 그날 오프닝에 쓴 거죠. 다만 일상의 순간을 예민하게 알아채려면 오감을 열어 놓는 습관이 필요해요. 이거 진짜 어려워요.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다 동원해서 일상을 살려고 노력해보세요. 보이는 게 달라진다니까.  
오프닝 멘트를 엮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라는 책을 냈죠. 저자에 ‘가수’ 김창완이 아닌 ‘아저씨’ 김창완이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20대부터 ‘아저씨’란 소리를 들었어요. 79년에 ‘개구장이’라는 동요집을 냈거든요. 노래를 듣던 아이들이 저를 아저씨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바람에 나이도 어린데 ‘아저씨’ 타이틀이 붙은 거지. 지금은 오히려 이렇게 불리는 게 좋아요. 친근하니까. 할아버지보단 아저씨가 낫잖아요.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SNS

사진 웅진지식하우스 SNS

책에서 건네는 덤덤한 위로가 좋았어요.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인 것처럼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고, 평범해도 괜찮구나.    
제 위로는 ‘빨간약’이나 ‘항생제’ 같은 거예요. 광범위한 위로인 거지. 전문가 처방 같은 위로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런 ‘맞춤형 위로’는 해주지 못하고 할 수도 없어요. '오히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러고 있다'는 부분을 말해주는 거죠. 어떨 땐 그런 것들이 더 심금을 울릴 때가 있잖아요.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어떤 아이가 엄마한테 꾸지람을 듣고는 우울해졌는지 "마음에 먼지가 앉은 것 같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하면 그 먼지가 사라질 것 같냐”고 물으니까 "‘사랑해’라고 말해 달라"는 거예요. 사랑이야말로 평범하지만, 누군가의 숨통을 트게 할 수 있는 거죠.   

✅Part 2. Z세대의 '추구미'

 "Z세대 롤모델로 김창완이 거론되고 있다"는 말에 "나를 왜 좋아하는 거냐"며 웃어 보였다. 장진영 기자

"Z세대 롤모델로 김창완이 거론되고 있다"는 말에 "나를 왜 좋아하는 거냐"며 웃어 보였다. 장진영 기자

Z세대 롤모델로 꼽히는 거 아세요? 작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한 시간 내내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김창완 아저씨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요? 생각도 못 했어요. 어쩐지 요새 ‘김창완 밴드’ 공연에 젊은 친구들도 오더라고.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고 희한하다고 생각하긴 했거든. 날 왜 좋아하는 거지?  
요샛말로 ‘추구미’라고 하거든요. 
쭈꾸미? (웃음)  
'추구+미(美)'요.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라는 뜻으로요. 본인의 어떤 면이 젊은 층의 '추구미'가 됐을까요?  
글쎄, 모르겠어요. 추측을 해보자면 내가 악역 전문배우라 그런 것 같아요. (※김창완은 '하얀거탑'(MBC), '마의'(MBC) 등에서 악역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나쁜 사람같이 보였는데 노래 부르는 모습은 악당 같지 않거든. 실제로 라디오 할 때는 “친절하게 진행하던 아저씨가 정말 그 아저씨 맞냐"며 아들이 묻더라는 사연도 왔어요. 할아버지뻘 악당이 무대에서 누구보다 신나게 노래 부르니까, 그게 신선해 보인 걸까요?  
아이유, 잔나비, 악뮤처럼 젊은 뮤지션과 작업도 많이 했어요. 이런 모습도 '꼰대' 같지 않은 어른, 닮고 싶은 어른으로 보이게 해요.
전 후배들이 정말 예뻐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삶에 치여 허덕이는 사람들 참 많잖아요. 현실은 쪼들리고 미래는 뿌연데, 다들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본인의 ‘근기(根氣·근본이 되는 힘)’를 믿고 꾸준히 하는 후배들 보면 정말 예쁘지. 앞으로도 본인을 믿고 용기 냈으면 좋겠어요.  
어떤 용기를 내야 한다는 뜻일까요?  
내가 오늘 아침 낸 용기는 이겁니다. ‘아침창’은 떠났지만, 아침이 날 떠난 건 아니잖아요. 이걸 느낀 거죠. 어느 상황에나 대입해볼 수 있는데요. 노래 부르는 게 나에게 돈을 주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내가 아직은 노래를 떠나지 않았단 걸 깨닫는 것, 삶에 용기를 낸 거예요.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찾고자 하면 희망은 찾아질 겁니다. 전 젊은 친구들을 믿어요.
2023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모습. 사진 김창완밴드 SNS

2023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모습. 사진 김창완밴드 SNS

'좋은 어른'은 젊은이를 믿어주는 사람이란 생각도 드네요.      
전 인자한 어른이 참 좋더라고요. 어른이 되면 자꾸 젊은이를 꾸짖고 싶어지잖아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전 백 가지를 가르쳐주는 어른보다는 한 가지를 참아주는 어른이 좋아요. 권위를 갑옷으로 입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고 하죠. 그러려면 자신의 허물이나 나약함도 다 드러낼 수 있어야 해요.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쉽지 않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조언 부탁드려요.       
저는 그냥 ‘너의 길을 가라’고 해요. 저도 스물셋에 데뷔해서 내 갈 길 가면서 쭉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대단하게 뭘 한 것도 아냐. 제가 아들을 26살에 낳았거든요. 애가 애를 낳은 거죠. 그래도 아비라고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거였어요. '남의 길 기웃거리지 말고, 너의 길을 걸어라.' 어떤 젊은이라도 겨울나무가 가진 잠재력은 있어요.  

✅Part 3. "흔들리는 40대, 젊은 나와 이별하세요"  

올해 일흔이 되셨어요. 달라진 게 있을까요?    
시간의 흐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달라졌어요. 요새는 음악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끼거든요. 이런 감흥은 젊은 시절에는 갖지 못한 신세계에요. 젊을 땐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그 시간이 느껴져요. 구본창 작가의 ‘비누’ 시리즈를 좋아하는데요. 닳아 없어져 가는 비누를 찍은 사진 작품이에요. 희미해져 가는 것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느끼는 거죠. 거품 내며 더러운 걸 씻어주고, 그만큼 본인은 닳아 없어지고. 이런 모습에서 숭고함이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어요. 그게 나이 들었다는 거 아닐까요. 
구본창 사진작가의 '비누'

구본창 사진작가의 '비누'

이 시리즈가 '마흔 공부' 인데요. 누구나 40대 전후로 흔들리는 것 같아요. 잘 살고 있나 자꾸 묻게 되고요. 2011년에 발표한 김창완 밴드의 ‘Darn it’ 가사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더라고요. '학교를 다니고/학원을 다니고/대학을 나오고/직장엘 다녀도/아무것도 모르겠네/정말 모르겠네' 원래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요? 
인생 다 똑같아요. 저도 그랬는걸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가사를 어떻게 썼겠어요. 근데 이 얘기는 해주고 싶어요. 40대가 어떤 면에선 진짜 자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요. 직업적 성공을 거두었거나, 혹은 실패했을 수도 있고요. 마흔 살의 여러 가지 표정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 매몰되거나 안주하지 말고 한 번 더 변할 기회로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거죠.  
‘한 번 더 변할 기회’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젊은 나와 이별하는 겁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에 “잘했다”고 스스로 훈장 하나 달아주고 서랍에 넣는 거예요. 실패한 모습은 그냥 휴지통에 던져버리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마흔까지의 삶을 싹 정리하는 거죠. 훈장 꼭 쥐고 같은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 폐기하길 주저하지도 마세요. 과거에 연연하면 지금의 내가 초라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과거의 나’를 끊어내야 ‘새로운 나’와 만날 수 있어요. 갑자기 여행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다른 일 하고 싶으면 그것도 해보시고요. 
'김창완의 40대'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산울림 재결성 앨범 '무지개'(1997)를 냈고, KBS 드라마게임 '야채식빵 굽는 남자'(1995)에서 첫 주연도 맡았어요.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한 도전이었을까요?      
그땐 몰랐지. 그냥 앞만 보고 살았던 거 같아요. 지금에 와서야 나를 돌아보면서 깨달은 거지. 마흔은 자아 형성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젊은 나와 결별하면서 동시에 완고해져 가는 나를 설득해야 할 시절이에요. 그래야 한 번 참아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는 거지.
첫 주연작 KBS 드라마게임 '야채식빵 굽는 남자'(왼쪽)와 산울림 재결성 앨범 '무지개'

첫 주연작 KBS 드라마게임 '야채식빵 굽는 남자'(왼쪽)와 산울림 재결성 앨범 '무지개'

40대에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자신을 재단하지 마세요. ‘나는 이렇다’ 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섣부른 확신 갖는 걸 경계하세요. 난 그런 말을 해주고 싶네. ‘나는 안 맞아’ 하면서 미리 포기하지도 말고요.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난 그런 거 몰라요. 안 좋아해요. 그런 거에 갇히지 말라니까요.(웃음)
네. MBTI에 갇히지 않을게요.(웃음) 그럼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런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삶이 행복한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시기마다 다 달라요. 행복한 삶을 그린다는 건, 결국 제가 삶을 재단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행복이나 성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진짜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거든. 다들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면 좋겠어. 내가 비관주의자라서 그런가? 
매 순간 행복하지 않더라도, 단단하게 살고 싶어요.  
단단해지려면 부드러워지세요. 생각은 날카롭고 냉정해도 되거든요. 근데 마음은 달라요. 포용할 수 있어야 해요. 밤송이 같은 생각을 진흙 같은 마음에 품는다고 봐도 좋겠네요. 품어주는 것만큼 단단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음악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고 있는 김창완은 이 날도 즉석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장진영 기자

음악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고 있는 김창완은 이 날도 즉석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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