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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서 전신주 깔린 70대, 8시간 넘는 뺑뺑이 끝 숨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신주에 깔려 골절상을 입은 70대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환자 이송을 거부한 의료기관을 상대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

4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5시11분쯤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A씨(75)가 트랙터에 받혀 쓰러진 전신주에 깔렸다. A씨는 다리와 허리 등을 크게 다쳤고, 소방 구급대가 오후 5시21분 현장에 도착해 A씨를 구조했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구급대 도착 당시 A씨는 왼쪽 발목에 골절이 있었으나 의식은 분명한 상태였다”며 “수술이 급하다고 판단해 건국대 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 등 2곳에 이송을 요청했지만, 건국대 충주병원은 ‘마취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충주의료원은 ‘미세혈관 접합이 가능한 큰 병원이나 권역외상센터로 가야 한다’며 환자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 2곳이 환자 이송을 거부하자, 구급대는 오후 5시50분 충주 시내에 있는 B병원으로 A씨를 옮겼다. A씨는 이곳에서 미세골절 부위 수술을 받다가 복부 내 출혈이 발견됐다. B병원은 내과·성형외과·재활의학과 등 3개 과목만 진료하고 외과 의료진이 없어 해당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병원 의료진은 강원도 원주의 연세대 세브란스기독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으나, 이미 수술 환자 2명이 대기 중이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청주의 충북대병원은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튿날 오전 1시50분쯤 충주에서 약 100㎞ 떨어진 경기도 수원의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고 아홉 시간여 만인 오전 2시22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와 충북도는 이날 충주 지역 종합병원 조처가 적정했는지 등에 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한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환자단체들과 만나 환자와 가족이 겪고 있는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간담회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등 세 단체가 참여했다.

환자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환자들이 참여하는 의·정 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각자 입장만 되풀이하는 사이 정작 환자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의료계·정부가 강대강 대치하고 있는데 환자들이 목소리를 어떻게 내겠냐”며 “치료받을 때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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