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21) 봄날이 점점 기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봄날이 점점 기니
신계영(1577∼1669)

봄날이 점점 기니 잔설(殘雪)이 다 녹거다
매화는 벌써 지고 버들가지 누르럿다
아해야 울 잘 고치고 채전(菜田) 갈게 하여라
-선석유고(仙石遺稿)

그리운 옛 풍경

1634년에 동부승지를 지냈고, 1637년에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600여 명을 구출해온 선석 신계영(辛啟榮)이 지은 전원사시가 10수 중 첫째 수다.

봄날이 점점 길어가니 남은 눈이 다 녹는구나. 매화는 벌써 지고 버들가지는 물이 올라 누렇게 되었다. 아이야, 울타리 잘 고치고 채소밭 갈게 준비하여라.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시인은 벼슬을 떠나 전원에 묻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에 두 수씩, 그리고 제야(除夜)를 소재로 두 수를 썼다. 전원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노래한 후 한 해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늙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시상을 마무리한다.

볕 든 둑에 풀이 기니 봄빛이 늦어 있다/작은 정원 복숭아꽃 밤비에 다 피었다/아이야 소 좋게 먹여 논밭 갈게 하여라

옛 선비들은 나이 들면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농경시대의 생활상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지러운 정치판을 보면 새삼 그리운 옛 풍경이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