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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고준위 특별법,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애국심에 호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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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내 이웃에 두는 것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데는 찬반이 있을 수 없다. 고준위 처분장은 원자력 운영국이면 반드시 하나 있어야 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이를 건설하기 위한 법 제정을 막는 것은 우리나라 에너지 백년대계를 망치는 일이다.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적합한 부지를 선정하고, 관련 연구를 하고, 안전성과 안정성을 평가하고, 인허가를 취득하는 등 꼭 필요한 내용만 담길 특별법 제정을 막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특별법의 핵심 쟁점은 원전정책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다. 탈원전 측은 특별법을 탈원전의 방해물로 본다. 또, 이들은 이 법안이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을 위한 절차 등을 담고 있다는 내용은 빼놓은 채 원전부지를 영구처분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중저준위 방폐장은 참여정부 시절 특별법을 제정해 경주에 설치했다. 그러나 고준위 방폐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2차례 비슷한 공론화만 반복한 후 실행력 없는 정부 계획만 있는 상태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대부분 발전소의 수조 안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 수조의 용량이 거의 포화되어 발전소 부지에 공랭식 건식 방식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했다가 향후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에 처분하도록 해야 한다. 재활용 가능한 것과 진짜 쓰레기를 선별해서 처분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최종 처분장은 꼭 필요하다. 시간이 이대로 간다면 발전소가 멈춰야 한다. 원전 1기당 연간 4000억원에서 1조원 가까이 한전에 흑자를 안겨주고, 전기 소비자 요금을 낮춰주는 원전이 멈춘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손해다. 그리고 석탄 화력 대비 원전 7기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분은 우리나라 전체 산림의 연간 흡수량과 같은 수준이다.

이렇게 국가 에너지 대계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법 제정을 나 몰라라 내버려 둔다면 국회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에너지 문제는 정치 진영의 문제가 될 수 없다. 현재 발의된 고준위 특별법은 21대 국회가 끝나면 물거품이 되고, 새로 국회를 구성하고 다시 논의한다 해도 합의 시점도 모른 채 시간만 흘러가게 된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주기를 바란다. 이는 국민을 위한 국회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특별법 앞에서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가릴 때가 아니다. 오로지 나라와 국민의 미래만을 생각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줄 것을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애국심과 양심에 간절히 호소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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