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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총 쏘자 '박정희 양아들'이 떴다…그 이름, 전두환

중앙일보

입력

추천! 더중플 - 전두환 비사

영화 ‘서울의 봄’의 악당 전두광(황정민 분). 이름은 한 글자 바꿨지만 그 모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건 누구나 압니다. 한국사에 남을 빌런이지만 영화에서도 그랬듯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는 인물이었죠. 오늘의 ‘추천! 더중플’에선 이 문제적 인물 전두환을 탐구하는 시리즈 ‘전두환 비사’(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18)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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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중 앞에 처음 나타난 장면. 1979년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중 앞에 처음 나타난 장면. 1979년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장 자격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대표적 인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전두환 비사’는 이 문제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한 탐구다. 인물 탐구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박정희 양아들’이라 불린 군인 전두환  

군인 전두환은 일찌감치 눈에 띄었다.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생도 시절 육사 참모장이었던 이규동(육사2기)이었다.
이규동은 내심 전두환을 사윗감으로 점 찍어두고 후원했다. 당시 후원이라고 해봐야 가난한 생도들이 주말 외출 나왔을 때 집밥 한끼 해먹이는 정도였다.
넉살 좋은 전두환은 그 때부터 동료 생도들을 몰고와 같이 신세를 졌다. 이런 전두환을 이규동의 딸 이순자(당시 중학생)가 “아저씨”라며 따랐다.

이규동은 1959년 사위 전두환 중위를 6관구 박정희 사령관에게 소개했다.
박정희는 “내 부관 하라”며 잡았지만 전두환은 사양했다. ‘강한 군인’을 꿈꾸던 전두환은 미국으로 유학, 특수전(레인저)교육을 받고 귀국해 공수부대(1공수) 창설에 참여했다.

박정희와의 인연은 5·16 쿠데타로 본격화됐다.
전두환은 5·16이 터지자 육사생도들을 설득해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성사시켰다. 불안하던 쿠데타를 기정사실로 굳히는 결정적 공을 세운 것이다.

박정희는 전두환을 국가재건최고회의 민원비서관에 임명했다. 얼마 뒤 전두환이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 사직하자 박정희는 다시 전두환을 붙잡으려 했다. 박정희가 “전역해서 국회의원 출마하라”고 권했지만 전두환은 ‘직업 군인’의 길을 고수했다.

▶[전두환 비사] 청와대 향해 조명탄 날렸다…‘박정희 양아들’ 만든 사건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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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군인’에서 ‘정치 군인’으로

이후 전두환은 ‘군인의 길’을 열심히 달렸지만 박정희와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전두환은 1968년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1·21 사태) 당시 청와대 경비를 맡은 30경비대대장으로 결정적 공을 세웠다. 전두환은 1978년 제1사단장 시절 제3땅굴을 발견해 미군철수 압박에 시달리던 박정희에게 정치적 명분을 제공했다.

박정희는 1979년 봄 마치 10·26을 예감이라도 한 듯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발탁했다.

전두환은 10·26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0·26은 12·12를 불러왔고, 12·12는 5·17을 불러왔으며, 5·17은 현대사의 비극 5·18을 초래했다.

▶[전두환 비사] 전두환 “군인은 멸사돌진”…김재규 체포 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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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비사] ‘박정희 위험’ 눈치챈 전두환…직보 사흘 전 10·26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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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박정희의 총애와 죽음으로 ‘정치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10·26은 돌발 사건이었지만, 12·12는 쿠데타의 시작이었으며, 그 쿠데타는 1980년 8월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으로 완성됐다. 세상에서 가장 긴 쿠데타였다.
전두환은 박정희로부터 군부정권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진정 양아들이었다.

▶[전두환 비사] 김재규는 왜 그날 총을 쐈나…‘박정희 양아들’이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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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군부독재의 역사적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다. 역사를 거스르며 군부통치 8년을 연장했던 전두환의 몰락은 집권 과정 이상으로 드라마틱했다. 그리고 그 결정적 순간마다 미국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전두환 비사] 가택연금 DJ ‘깜짝 외출’ 뒤엔, 박정희 미워하는 카터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445 

‘전두환 비사’는 중앙일보가 1990년부터 4년간 연재했던 ‘청와대 비서실’을 업데이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30년이란 세월 탓에 업데이트 작업은 새로운 글쓰기가 됐다. 30년간 미국의 역할이 많이 드러났다. 주한 미국대사들의 회고록이 출간되고, 국무부 비밀문서들이 비밀해제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이 계엄령 대신 629선언으로 물러난 배경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팩트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했다. 읽기 편하도록 주요 사건 중심으로 풀었다. 매회 말미에는 등장인물 약력을 첨부했다.

<전두환 비사> 목차
〈전두환 비사: “이젠 각하라 불러”…5공 신군부 권력비사〉 지금까지 연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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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궁정동의 총소리

1회. 김재규는 왜 그날 총을 쐈나…‘박정희 양아들’이 등판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2757

2회. 전두환 “군인은 멸사돌진”…김재규 체포 때도 그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4342

3회. 청와대 향해 조명탄 날렸다…‘박정희 양아들’ 만든 사건 셋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5997

4회. ‘박정희 위험’ 눈치챈 전두환…직보 사흘 전 10·26 터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642

5회. 가택연금 DJ ‘깜짝 외출’ 뒤엔, 박정희 미워하는 카터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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