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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경제 '급한 불'에…바이든·시진핑 '일단 상황 관리' 공감대

중앙일보

입력

미국과 중국 정상이 2일(현지시간) 105분 간 전화 회담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북한·중국·러시아가 대립하는 신냉전 기류 속에서 이뤄진 G2 정상 간의 통화다.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방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예우했지만, 정작 첨단기술 수출 규제 등 대중국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의 방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예우했지만, 정작 첨단기술 수출 규제 등 대중국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두 사람의 직접 대화는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이후 약 5개월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중 정상은 2022년과 지난해 11월 1년 간격으로 대면 회담을 했다. 마지막 통화는 2022년 7월이다. 소통 주기가 빨라진 배경은 대선을 앞둔 미국, 내치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 양측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 뉴욕타임스(NYT)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경쟁에 집중하고 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난과 군 고위층 부패 등으로 씨름하는 상황에서 회담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두 정상은 이번 통화로 안보에 대해선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첨예하게 맞선 경제 문제에 대해선 이견을 노출했다.

양국 ‘레드라인’ 공개 "선 넘지 말라"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일시적 평화’를 위해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사실상의 ‘레드라인’과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벌어질 상황을 동시에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방위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 유럽과 대서양 전체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제기했다. 또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겠다는 이란을 배후에 둔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을 억제하는데 시 주석의 도움을 받길 원한다”고도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남중국해의 법치와 항행의 자유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시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곳은 전쟁 중이거나 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대선을 앞둔 바이든의 레드라인은 중국의 확전 개입이란 의미가 된다.

中, 대만 문제 콕 집어 “레드라인”

시 주석은 아예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의 첫 번째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대만독립’ 세력의 분열 활동과 외부 세력의 격려와 지지를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관영매체 신화사는 시 주석의 발언을 ‘강한 경고’라고 표현했다.

지난 1월 12일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운동장에서 열린 독립 성향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선거 전야 마지막 유세 현장. 미국은 라이칭더 총통의 5월 취임을 전후해 대만 인근에서 우발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2일 대만 신베이시 반차오 운동장에서 열린 독립 성향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선거 전야 마지막 유세 현장. 미국은 라이칭더 총통의 5월 취임을 전후해 대만 인근에서 우발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최소한의 공감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 조정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대만의 지위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미국은 ‘독립파’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 당선인의 5월 취임을 계기로 대만 해협에서의 안보 상황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동시에 장기화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은 대선을 앞둔 바이든의 지지율을 위협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신화사도 “바이든 대통령이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고, 중국 체제를 바꾸지 않으며, 중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강화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의지가 없음을 재확인했다”며 대만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회담의 핵심 성과로 제시했다.

日총리 방미…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의

정부 소식통은 이날 미·중 양국 정상이 대만 문제에 원칙적 공감대를 밝힌 것과 관련 “이달 예정돼 있는 미국의 외교 일정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환한 얼굴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환한 얼굴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오는 10일엔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다음날(11일)엔 일본·필리핀과의 3국 정상회의도 이어진다. 지난해 8월 한·미·일 3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이은 두번째 3자 정상회담으로, 이번엔 남중국해에서 3국 해군의 공동 순찰 방안 등이 합의문 형태로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전화 회담은 극단적 반발이 예상되는 중국과의 사전 조율을 위해 성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측은 “전화 회담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성사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양측은 이날 통화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3~9일)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수주내)을 통해 관련 대화를 지속해나가기로 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3대 원칙으로 평화·안정·신뢰를 꼽으며 “전략적 인식 문제는 시종 중·미 관계에서 반드시 잘 꿰어야 할 ‘첫 번째 단추’”라고 언급했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평화와 안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말로 해석된다.

선거·내치에…물러서기 힘든 경제 이슈

반면 선거와 경제 회복을 위해 양국 모두 양보하기 힘든 사안들에선 이견이 노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 미국 기술이 미국의 국익을 훼손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며 대중(對中) 첨단 기술 수출 통제 등의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 중국의 불공정 무역 정책과 비시장적 경제관행을 거론했다.

대선 이슈로 부상한 영상 공유 앱 ‘틱톡’ 문제도 언급했다. 커비 조정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틱톡 금지가 아닌 매각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이는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 하원은 틱톡의 모회사인 중국계 바이트댄스가 6개월 내에 미국내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틱톡을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한 상태다. 다만 NSC 당국자는 “이 모든 것은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분리)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등 공급망 확보를 놓고 극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등 공급망 확보를 놓고 극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시 주석은 미국의 대중 경제 조치에 대해 “디리스킹이 아니라 리스크 창출”이라며 “만일 미국이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발전을 억압하고 중국이 정당하게 발전할 권리를 박탈한다면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중국 측은 시 주석이 대만과 경제조치 등 레드라인을 언급했다고 전했지만,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 어떻게 대응할 지 구체적인 방식은 밝히지 않았다.

미국 측도 신뢰가 깨졌을 때 나올 행동에 대한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홍콩의 자치권 문제와 신장을 포함한 중국의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를 다시 제기했다”고 강조했다. 홍콩의 자치권과 인권 문제는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한편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을 강조하며 한반도 문제를 테이블 위에 직접 올려놓으면서 러시아와 급속하게 밀착하고 있는 북한 관련 이슈가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주요 압박 카드가 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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