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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대 증원 2000명’ 앞세워서 난국 풀리겠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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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2000명은 최소, 더 타당한 안 논의 가능”

성태윤 실장 “탄력 검토할 수도”…대화 재개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의대 증원·의료개혁,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담화문을 발표했다. 51분의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시간 대부분을 의대 증원 2000명의 추진 근거와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정부가 충분히 검토한 정당한 정책을 절차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데 근거도 없이 힘의 논리로 중단하거나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의료계는)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조건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해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통령 담화는 아쉬움이 적잖다. 무엇보다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앞세우는 게 현재의 난국을 푸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어제 대통령 담화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한 만큼 다른 게 없어 더 실망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료계와 정부의 강 대 강 대치로 인한 국민의 불안 역시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민심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29일 서울경제신문의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의대 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 원안대로 매년 2000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2~14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2000명 증원’(47%)이 ‘증원 규모 조정’(41%)보다 많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등으로 진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의 불안감과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당 안에서도 대통령 담화의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대통령 담화 직후 “(의대 증원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며 “증원 숫자를 포함해 정부가 (의료계와) 폭넓게 대화하고 협의해 조속히 국민을 위한 결론을 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2000명이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전향적인 입장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건 긍정적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한 모든 의제를 열린 자세로 대화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