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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도의 퍼스펙티브

계층·국가 간 빈부차 커지면서 테러 조직도 돈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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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모스크바 인근 테러와 후폭풍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지난달 22일 금요일 저녁 8시쯤 모스크바 북서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위치한 크로쿠스 시티홀 음악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해 144명이 죽고 360명 이상이 다쳤다. 극단주의 테러로 악명이 높은 IS는 이번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밝혔다. 미국은 테러 발생 가능성을 러시아에 미리 알려줬다고 하면서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번 테러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애써 강조했다. 사건 발생 직후 러시아 당국은 주범 네 명, 공범 여덟 명 등 모두 열두 명의 테러범을 체포한 후 조사에 들어갔다.

러시아 “범인은 급진 이슬람주의자”…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지목
미국 등은 아프간에 거점 둔 IS 호라산 지부의 독자 행동으로 판단
정확한 테러 배후 규명은 어려워, 각자 유리한 대로 ‘음모론’ 팽배
모스크바 테러범 740만원에 비인간적 범행…테러 세계 확산 기세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의 테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지난달 26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을 놓고 있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 조직인 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배후에 있다고 지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의 테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지난달 26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을 놓고 있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 조직인 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배후에 있다고 지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건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25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범이라면서도 누가 이번 테러에서 이익을 얻는지 반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암시했다. 며칠 후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돈과 암호화폐를 받은” 범인들이 잔금을 받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향하다가 잡혔다고 밝혔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를 매수해 러시아에 테러 공격을 가했다는 말이다.

미국 “우크라이나는 테러와 무관”

미국과 서유럽은 러시아가 테러를 빌미로 우크라이나에 맹공을 가하기 위해 테러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과 서유럽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반러시아 항쟁을 지원한다. 일단 배후를 제외한다면 범인은 IS나 급진 이슬람주의자다. 러시아는 IS라는 말을 쓰지 않았는데 IS는 사건 직후 자신들이 테러를 벌였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더 구체적으로 IS-K(IS의 호라산 지부)를 지목했다.

IS의 기관지 알아으막은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IS 전사들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모인 기독교인들을 공격해 수백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건물을 파괴한 후 기지로 안전하게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테러범 네 명이 테러를 결의하는 사진과 상세한 공격 내용도 담았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이 IS와 이슬람에 맞서 싸우는 국가 간 전쟁이라는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보도에는 테러를 저지른 조직이 IS-K라는 말은 없지만 서구 정보당국과 언론은 IS-K가 테러를 독자적으로 계획하고 수행했다고 봤다.

독일·프랑스도 테러 위협에 시달려

지난달 28일 IS 기관지 안나바는 러시아가 실패를 인정하기보다는 은폐하고자 서구 십자군 국가들이 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적국인 서구를 테러 공모 혐의로 비난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고 조롱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이란이 지난 몇 년 동안 IS 전사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패배를 인정하기보다는 서구를 비난했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IS 전사들의 공격에 배후가 있다는 ‘음모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전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 패배를 인정할 준비를 하라고 충고했다. 음모론을 집어치우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고다. 모스크바 이외의 다른 십자군 국가의 수도에서도 유사한 공격을 하겠다는 말이다.

IS는 독일 뮌헨의 얼라이언스 아레나를 공격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나올 때 잡아라”는 위협적인 메시지를 아랍어로 발표했다. 올여름 파리올림픽을 앞둔 프랑스는 모스크바 테러 이후 경계 태세를 최고 단계로 격상했다.

IS-K 후원자는 파키스탄 정보국?

그럼 도대체 IS-K는 어떤 조직인가. 2011년 시리아 내전을 틈타 ISI(이라크의 IS)와 ISS(시리아의 IS)가 합쳐 ISIS(이라크와 시리아의 IS)가 됐다. ISIS는 2014년 6월 29일 자신들이 점령한 이라크와 시리아 땅을 통합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선포하면서 스스로를 IS(이슬람 국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 세계 무슬림들은 IS의 급진적이고 잔혹한 이슬람은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므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 언론을 향해 IS라는 말 대신 다이시(Daish 또는 Daesh)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IS의 아랍어 표기에서 앞글자만 따서 만든 말이다. 뜻은 IS나 다이시나 같지만 무자비한 범죄 조직이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에 익숙한 전 세계인들이 비판 없이 받아들일까 걱정해서다. 무슬림들이 꿈꾸는 이슬람 국가는 테러 분자들의 IS가 아니기 때문이다.

IS-K는 IS의 호라산 지부로 아프가니스탄을 거점으로 삼는다. 페르시아어로 해가 뜨는 곳을 뜻한다는 호라산은 현재 이란 북동부 지역을 차지하는 주의 이름이다. 전통적으로는 이란·아프가니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까지 포함하는 너른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IS-K는 역사적으로 호라산으로 불린 곳을 모두 다스리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사실 IS-K는 파키스탄 정보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에도 탈레반이 있는데 이들 조직 이름은 타흐리케 탈레반 파키스탄(TTP)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파슈툰족이 중심이다. 이들은 파키스탄 군경을 대상으로 싸우면서 독립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파키스탄 정부에는 발로치스탄족 독립 세력과 함께 골칫거리다.

탈레반과 IS-K는 적대적 관계

펀잡 출신 파슈툰이 주축인 파키스탄 탈레반 역시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다. 내부 갈등으로 파벌이 발생하자 파키스탄 정보국이 불만 세력의 지도자인 하피즈 사이드 칸(1972~2016년)을 매수해 세력을 만들고 지원했다. IS-K의 시작이다. 일설에 따르면 2013년 하피즈 사이드 칸이 IS에 충성을 맹세해 호라산 지부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확실한 것은 IS가 아니라 파키스탄 정보국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파키스탄 정보국은 왜 IS-K를 지원했을까. 무엇보다도 파키스탄 탈레반 세력을 분열시키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IS-K의 주축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 사는 오라크자이 부족이다.

IS-K는 현재 탈레반과도 적대적이다. 모스크바 테러 직후 탈레반은 IS-K를 비난했다. IS-K는 “서방과 동방 십자군의 동맹이 돼 테러를 규탄한” 탈레반을 배교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IS-K의 비난과 달리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똬리를 튼 IS-K를 서방의 끄나풀로 인식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뒤흔드는 서방의 전초대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 뒤에는 미국과 파키스탄이 있다는 말이다.

‘적의 적은 친구’, 복잡한 이해관계

IS나 IS-K를 보는 눈은 복잡하다. 순수한 테러 단체로 보면 간단한데, 저마다 이들 배후에 어떤 나라가 있다고 보는 ‘음모론’이 팽배하다.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나라는 미국·영국·이스라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보기관인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 해외정보국(MI6), 이스라엘 모사드다. 그럴싸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과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 편에 섰고, 미국·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는 반군을 지원했다.

반군과 급진 이슬람주의자 세력인 안누르라 전선이 합해 만든 조직이 IS인데, 이들이 미국과 아랍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IS 전사들이 다치면 치료를 해줬다. 또 IS가 시리아 정부군과의 싸움에서 밀리면 미국 공군이 나서 지원 폭격해 전세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IS 공군이 있다고 비아냥거렸다. IS를 서방이 만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한다고 여긴다. 이번 모스크바 테러에서 푸틴이 급진 이슬람주의자의 배후를 말하는 이유다. 반면 IS는 기관지를 통해 밝혔듯이 IS 전사들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본 측이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늘 음모론을 들고 나온다고 일축한다.

테러의 정확한 배후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난해 10월 7일에 발발해 여전히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크고 작은 테러가 2024년 세계를 위협할 기세다. 이번 모스크바 테러에서 돈이 테러의 중요한 원인이 된 점은 특히 주의할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계층이나 국가 간 빈부차가 큰 현실에서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보다 돈이 더 매력적이다. 모스크바 테러범은 740만원에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