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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10주년...초연과 상반된 배역 옥주현의 변신, 당신은 어떤 가면 쓰고 있나

중앙선데이

입력

얼마 전 정치권에서 입방아에 올랐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랫동안 사치와 허영으로 국고를 탕진한 왕비로 통했다. 그런데 요즘엔 비극적인 역사 속 루머의 희생양으로 보기도 한다.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목걸이 사건’은 그녀에게 덫을 놓은 사기극이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음에도, 이미 대중의 뇌리에 ‘목걸이 사건=마리 앙투아네트’로 깊이 각인된 탓에 그녀를 향한 비난은 계속됐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10주년 그랜드 피날레 시즌을 맞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진실에 관한 질문 같은 무대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빈 뮤지컬 ‘엘리자벳’ ‘모차르트!’의 미하엘 쿤체·실베스타 르베이 콤비가 창작진으로 참여한 일본 창작뮤지컬이다.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981)를 원작으로 2006년 일본 대형기획사 토호가 제작해 초연 당시 25만 관객을 동원했고, 독일에서도 공연되어 ‘유럽에 라이선스 판매된 최초의 일본 뮤지컬’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한국 프로덕션은 대본과 음악까지 재창작에 가깝게 각색해 일본에 역수출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화려한 베르사이유와 지저분한 파리 거리가 끝없이 교차되며 보여주는 귀족의 삶과 가난한 시민의 삶의 극적인 대조는, 두 계급이 결코 섞일 수 없음을 은유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쌍둥이처럼 닮은 가상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대립이 축인데, 마그리드는 굶주림에 지쳐 빵을 구걸하며 귀족과 왕실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는 거리의 여자다. 2014년 초연 당시 마리 역할을 맡았던 옥주현 배우가 이번 시즌 180도 상반된 배역인 마그리드로 변신해 이목을 끄는데, 빛나는 타이틀 롤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누더기를 걸친 채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마그리드는 혁명의 배후세력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매수당해 ‘목걸이 사건’을 주도하고 마리에 대한 온갖 추문을 퍼뜨린 장본인이지만, 혁명의 위선과 공포정치의 잔인성을 목격한 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회의하는 입체적 캐릭터다. 마리의 이복동생으로 암시되지만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드라마 코드는 아니다. 누구는 왕비로, 누구는 거리의 천민으로 상반된 삶을 살아왔지만 같은 드레스를 입으면 감쪽같이 모두를 속일 수 있음을 직설하는 장치다. ‘껍데기가 전부 (...) 우리 삶은 가면무도회’라는 메인 넘버의 노랫말처럼,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을 뿐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혁명을 일으킨 시민군이라고 정의로울까. 가짜뉴스로 민심을 선동하고, 힘을 갖게 되자 반대파 척결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혁명을 부추긴 오를레앙 공작도 “난 모든 걸 가졌지만 이정도로 만족 못 해/ 난 너희를 이끌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지(중략) 양심 따윈 버려 그건 패배자의 것/ 난 승리를 원하지 그게 바로 나, 난 최고니까”라고 고백한다. 정의를 위해 시민 편을 드는 척, 결국 자기가 왕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진실도 의심해 볼 일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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