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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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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금찬(1918~) '새' 전문

새는 /몇 십년이나 될까/내 가슴에 집을 짓고/살았다

어느 날/칼날의 날개를 펴/둥지를 떠나고 말았다

빈 집은/바람이 부는 날/울고 있다

나는 아직도/그 새의 이름을/모르고 있다네.



원로 선배시인들께서 건강하시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복된 일인지, 새삼스러워지는 이 가을, 저도 조금이나마 철이 들고 있나 봅니다. 가슴 속에 마음껏 날고 싶은 갈망의 새 한 마리씩 키우는 시인들, 이 비밀을 공유하고 시와 내통해 온 후배 시인들은, 황선생님의 그 새 이름이 무척 궁금합니다. 저희도 아직 저희 가슴 속에 키워오는 새가 무슨 새인지, 지금도 가슴 속 가장 황량한 빈터.빈가지에 둥지 틀고 살고 있는지, 오래 전에 이미 날아가 버렸는지, 그래서 이 가을의 시린 가슴팍이 더욱 터엉 빈 듯, 찬바람만 무시로 들락거리는지, 거미줄 펄럭이며 동굴 같은 빈 가슴이 울고 있는 가을밤, 댕기꽁지 빠알간 목마른 새 울음 피 토하는 시울음 한번 기차게 울고 싶습니다. 없는 새가 더 더욱 핏빛 붉은 가을시로 다시 태어나 줄테니까요.

유안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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