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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북교류로 「국악의 중요성」실감-「90송년 음악회」주역 황병기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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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의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12월8∼13일)에 참가했던 평양민족음악단의 한음악인은 황병기교수(이대 국악과)를 북한에 가장 널리 알려진 남한의 문화예술인으로 꼽았다.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 (10월14∼24일)에서 남북과 해외동포 음악인들이 걸쳤던 음악축제의 꽃으로 부각됐던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단장,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 북한 음악인들도 참가할 것을 권유한 초청인, 그리고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 추진위원회집행위원장. 이처럼 큰 일들을 치르느라 지난 13일에는 딸의 결혼식이 진행중인 시간에 판문점에서 평양민족음악단 일행을 배웅해야 했던 황교수는 『서울 전통음악연주단을 이끌고 평양에 다녀오는 것으로 그쳤더라면 남북 문화교류의 반만 이룬 셈이어서 국민들에게 빚진 느낌이었을 텐데 다행히 평양민족음악단도 서울에 다녀갈 수 있게돼 가슴 뿌듯하다』고 말한다. 올 들어 부쩍 고조된 통일열기는 문화계 전반에도 크게 확산됐으나 대체로 통일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 및 세미나개최 정도로 그친 데 비해 전통 음악분야만이 유일하게 남북 공동으로 통일음악잔치를 여는데 성공했다.
하고많은 문화예술분야 중 유독 음악을 통해 남북문화교류의 첫 장이 열린 것은 45년의 민족분단을 잇는 고리로 「천년의 소리」, 즉 전통 음악이 쓰였기 때문이라는 게 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범민족통일음악회와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를 계기로 한반도 전역에 걸쳐 화제의 주인공이 된 황교수는 북한 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성동춘부위원장과 함께 『통일의 길』을 작곡하여 최초의「남북합작노래」를 남기기도 했다. 그밖에 올 들어서 만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한국학세미나와 핀란드 쿠흐모음악제에 초청돼 가야금을 연주하고 거문고 독주 극 『소엽산방』과 한국창작무용음악 『불의 여행』을 작곡했으며 창작 곡 집 『밤의 소리』를 펴내기도 한 황교수는『이번의 남북음악교류를 계기로 국악의 중요성이 더욱 널리 인식되기를 바란다』고 단장이나 집행위원장이 아닌「국악인」으로서의 입장을 밝혔다.
재미 성악가 최현수씨(바리톤)가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9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남자 성악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올해 한국음악계의 큰 경사 가운데 하나. 지난 74년 정명훈 씨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이 콩쿠르의 피아노부문에서 2위에 입상한 이래 최고의 성과를 올림으로써 국제음악계에 한국인의 역량을 과시했다.
올 들어 한 소간의 거리가 급속히 좁혀지면서 양국간의 문화교류도 유례없이 활발해진 가운데 KBS교향악단의 지휘자 금난새씨는 레닌그라드 국제실내악궁정음악제(6월1∼I0일)에서 레닌그라드 필의 수석연주자들로 구성된「레닌그라드의 거장들」을 지휘하고 2장의 음반도 출반했다.
이어 7월과 9월에 레닌그라드 심퍼니를 객원 지휘하고 국내 음반사 레이블로 음반을 만들기 위한 녹음도 마침으로써 한소 음악교류를 본궤도에 올려놓는데 큰 몫을 했다.
작곡 계에서는 김정길교수(서울대)가 이끄는 창악회가 지난 9월 소련 작곡가 동맹회원들을 초청하여 한국과 소련 현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한국·소련 작품교류의 밤」과 세미나를 열었다. 또 10월에는 창악회 회원들이 소련 작곡가 동맹 초청으로 모스크바에 가서 한국창작음악의 흐름을 선보임으로써 음악도 교환 등의 본격적·정기적인 한소 음악교류문제가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프랑스 국립바스티유오페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되어 세계음악계의 한 복판으로 진출한 정명훈씨는 지난7월 바스티유 오페라 오키스트라를 이끌고 내한 공연을 가진데 이어 누나인 바이얼리니스트 경화, 첼리스트 명화 씨와 함께 정트리오 귀국 공연 무대를 꾸밈으로써 올 여름 국내 음악계에「정명훈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민간 교향악단의 창립 또한 손꼽을 만한 뉴스. 이진권씨가 음악감독을 맡은 서울 심퍼니 오키스트라와 장일남씨가 이끄는 서울 아카데미 오키스트라가 잇따라 탄생하여 교향악 활동의 활성화에 대한기대를 모았다.
외국식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 판치는 현행 음악문화에 맞서 민족적 정서를 반영하는 음악읕 널리 보급하려는 「민족음악운동」도 눈에 띄게 활발해진 한 해. 노동은교수(목원대)가 틀에 박힌 형식과 반성 없는 예술행위를 반박하면서 기존 음악계에 대한 「재야」로서 민족음악연구소를 중심으로 연주 및 연구 활동을 폈는가 하면, 11월에는 한국음악극 연구소, 민족음악연구회,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진보적인 연주단체나 평론가·성악가·이론가들을 결집한 민족음악협의회를 결성함으로써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를 지향하는」민족음악운동의 활동무대를 더욱 굳혔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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