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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막 인생 조훈 일 한번"…빈 병 줍던 80대 할머니 손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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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희 할머니 자필편지. 사진 안동시청

이필희 할머니 자필편지. 사진 안동시청

내 나이 팔십다섰 마주막(마지막) 인생을 살면서도 조훈(좋은) 일 한버도 못 해보고, 내 자식 오남매 키우고 가르치면 사느라고 힘들개 살며 업는 사람 밥도 한술 못 조보고…

꼬박 1년간 쓰레기장에서 빈병을 주워 팔아 모은 돈을 기부한 80대 할머니의 자필 편지가 화제다.

10일 경북 안동시에 따르면 안동시 옥동에 사는 이필희(85) 할머니는 지난 5일 서툰 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과 30만원을 들고 옥동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이 할머니는 "나도 이제 자식 다섯 다 키웠으니 좋은 일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며 30만원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이 할머니는 편지에서 "입든 옷 한가지 못 주고 나도 남에 옷 만날 어더입고 살아완는대 이재는 내 아이들 부자는 아니라도 배 안곱푸개(안고프게) 밥 먹고 뜨신 방에 잠자고 할 수 있스니 나도 이재 인생길 마주막에 조훈 일 한번 하는 개 원이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쓰래기장에 빈 병을 모아 팔면 돈이 댈 것 같타 일월부터 운동삼아 쓰래기장에 다니면 빈 병을 모아 파란느개(팔았는데) 십원도 안쓰고 12월까지 모운 개 15만원, 내 아이들 용돈 조금 주는 거 았계(아껴) 쓰고 15만원 보터(보태) 30만원. 작은 돈이지만 내 인생에 첨이고 마주막으로 불으한 어리니한태(불우한 어린이한테) 써보고 싶슴니다"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어더에(어디에) 보내면 대는지 몰라서 동장님을 차자읍니다. 동장님이 아라서 잘 쓰주시면 감사하갯읍니다"라며 "나는 어릴 때 공부도 못하고 눈든 멩인이라 글노자(근로자)복지관 한글 공부로 배운 글이라 말이 안대는 개 있서도 동장님이 잘 이해해서 일어보새요(읽어보세요)"라고 글을 맺었다.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린 그러나 정성이 가득한 이 할머니의 편지는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네티즌들은 "30억보다 귀한 할머니의 30만원", "맞춤법 틀린 편지가 어찌 이렇게 선하게 느껴지는걸까", "어르신의 마음 씀씀이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할머니 편지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할머니 마음을 배워간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전해주신 30만원. 수억원의 기부보다 따뜻하다" 등 의견을 남겼다.

이 할머니가 기탁한 성금은 어려운 이웃에게 쓰일 예정이다. 옥동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할머님께서 전해주신 돈은 바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계좌에 기탁했다"며 "어려운 아동을 비롯한 힘든 이웃에게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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