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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포스터가 마약 검사지…시대 읽은 광고쟁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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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제일기획 에서 김강민 아트디렉터가 자신이 기획한 포스터 앞에 서 있다. [사진 제일기획]

14일 제일기획 에서 김강민 아트디렉터가 자신이 기획한 포스터 앞에 서 있다. [사진 제일기획]

최근 서울 강남역과 신사역 일대에 걸린 드라마 포스터가 품귀 현상을 빚었다. 지난달부터 방영 중인 JTBC ‘힘쎈여자 강남순’을 알리는 내용이지만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특징이다. 엄지손톱 만한 ‘마약 검사 스티커’를 떼어낸 자국이다. 스티커마다 노란색 시약이 소량 포장돼 있는데, 이를 술이나 음료에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마약성분이 있을 경우 색이 연두색으로 바뀐다. 지난달 하순에 처음 게재했는데 준비한 물량 800장이 동난 상태다.

이 포스터는 김강민(42) 제일기획 아트디렉터(AD)가 기획했다. 지난 14일 만난 김 디렉터는 “버닝썬 사건 이후 일반인 사이에서도 마약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마침 ‘강남순’의 줄거리가 강남을 중심으로 마약 조직과 싸우는 내용이다 보니 ‘드라마 홍보 포스터로 마약 검사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아이디어도 신선했고 공익 목적이라 방송 제작사 측에서도 포스터 캠페인에 동의했지만, 막상 포스터 제작부터 애를 먹었다. 인쇄 과정에서 고열로 시약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먼저 나왔다. 그는 “두 달가량 인쇄소를 뒤졌다”며 “다행히 포스터 크기를 줄이고, 전체 색깔을 시약과 비슷한 살구색으로 맞춘 뒤 시약 위에 다른 글자 인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선 포스터 부착이 난항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영화관, 성형외과 등을 찾아다니며 허락받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어렵게 제작·배포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성형외과나 영화관에선 추가로 배포가 가능하냐는 문의가 늘고 있다. 주요 소셜미디어(SNS)에선 “우리 지역에 포스터를 붙여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온다.

김 디렉터는 “마약 범죄가 일반인도 바로 옆까지 왔다고 느낄 정도로 위협적”이라며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드라마 포스터로 마약이 심각한 범죄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파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2007년부터 광고 업계에서 일하면서 공익 캠페인에도 적극적이었다. 2021년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옷이나 모자에 상표 광고를 가리기 위해 붙이는 테이프에 ‘112’ ‘1366’ 등 신고 전화번호를 달아 범죄나 아동학대, 동물유기 등을 방지하자는 메시지를 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런 아이디어로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2022 클리오 어워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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