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하면 실속 없어|“통일-이성으로 접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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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70년대부터 시작된 남북대화의 진전과정을 되돌아보면 중단과 재개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나 다시 시작될 때마다 대화와 교류의 통로가 넓어지고 수준이 격상되어 가는 것을 경험했다.
70년대의 남북조절위원회와 적십자회담이 진행되다가 중단된 다음 80년대에는 대화통로가 적십자회담, 경제회담, 체육회담, 국회회담을 위한 준비접촉, 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등으로 넓어졌고 북한의 수재물자 원조회의를 계기로 남북한간의 물자교류 및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 단 교환이 있었다.
남북한이 각각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이번의 고위급 회담을 출발점으로 해서 90년대의 남북대화는 처음부터 보다 좋은 국제적 조건 속에서, 보다 높은 격으로, 더 큰 민족적 기대를 안고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남북대화의 장래가 장기적으로 밝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90년대의 남북대화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한국과의 부상용성 을 친화력으로 등질화 하려는 민족적 노력보다는 스스로의 특징을 더욱 소중히 하면서 상대방을 동화하는데 더욱 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남한의 일부 지식인들 중에는 90년대 남북대화를 맞아 지나치게 흥분하고 들떠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보자.
어떤 노 시인은 국내 일간신문에 「통일을 위해 온통 미쳐야한다」라는 제 하의 글에서 이렇게 외치고있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연형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리 일행이 38선을 넘어 평화의 집에 도착하는 텔리비젼 화면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이어 이 노 시인은 『45년 8·15 이후 남한에 들어온 미군과 이승만 친일세력이 애국적 민족자주운동을 탄압, 조국을 분단했다』고 단정하면서 『이번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의 정권은 북한측이 요구할 국가보안법 폐지와 군비축소제안을 허심탄회하게 받아 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90년9월5일)
또 한사람의 아주 저명한 모 중견시인도 같은 신문에 이번 남북송년음악회와 관련, 「통일의 축복 온몸으로 환영합니다」제 하의 글을 싣고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어떤 험악한 반 통일주의가 가로막을지라도 이 우렁찬 역사의 전진은 하나의 조국을 일으켜 세워놓고 말 것이다. …분단고착의 세력이 내외에 만만치 않게 버티고 있는 오늘인데도 그것은 숙연한 통일의 역학 앞에서 녹아버려야 할 운명…(90년12월8일자)』
여기서 「험악한 반 통일주의」 「내외의 분단고착세력」이란 어느 쪽을 지칭하고 있는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이래서 될 일인가, 통일에 대한 기대가 너무 감정적이나 흥분으로 치우치면 곤란하다. 통일은 역시 감정이나 흥분이나 영웅주의 적 발상보다는 민족적·이성적으로 꾸준히 접근해나가는 현명만이 비록 시간은 지연될지라도 가장 실속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북한은 종래의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온 사회를 「통일의 소원」과 「눈물의 천지」로 만들고 그 열기로 「범 민족」이라는 이름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전선」을 형성하려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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