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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치료제 확보, 국내법이 발목잡나?

중앙일보

입력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약의 국내 비축량이 전 국민의 2% 수준인 98만명분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현행 특허법이 오히려 치료약의 국내 비축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AI치료제나 유행병 등에 대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행 특허법의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제도 개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7일 열린우리당 양승조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종인플루엔자 대비 공청회'에서 남희섭 변리사(정보공유연대 대표)는 이같이 주장하고 제도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 변리사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전체 인구의 2%분의 비축량만 확보하고 있어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이는 (타미플루생산제약사인)로슈가 특허권을 통해 타미플루의 생산을 독점하면서 생긴 결과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비축량이 선진국 수준의 10%도 안되는 상황에서 이런 특허권의 문제로 정작 조류독감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값비싼 타미플루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남 변리사에 따르면 현행 타미플루 등에 관해서는 특허발명의 실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히 필요한 경우 강제실시가 가능하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법률이나 행정기관의 결과에 따라 정부나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특허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특허법 제106조에 따르면 정부가 특허발명을 직접 실시하거나 제3자에게 특허발명을 실시하도록 하려면,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여야 한다.

그러나 남 변리사는"조류독감에 대비하기 위한 타미플루의 확보가 전쟁에 준하는 비상상태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조류독감의 국내 상황에 비춰볼 때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재난사태가 선포돼야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현재 조류독감의 국내 상황이 '사람의 생명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 또는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라고 특허청이 해석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것.

또 남 변리사는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이런 비상사태를 규정하고 있는 특허법 제106조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나 외국의 입법례에 비해 지나치게 정부 사용의 범위 제한을 꼽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특허권을 보호하는 특허청장이 강제실시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상위법인 특허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어서 특허청의 역할을 오해해 생긴 잘못된 규정으로 보고 있다.

또 한국과 달리 미국은 특허발명의 강제실시에 관한 일반 규정을 특허법에 두지 않고 개별 법률에 관련 규정을 두면서 특허발명을 사용하거나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강제실시를 광범위하게 활용, 유럽연합이 이에 항의하기도 하는 등 제도 개정의 절실함을 역설했다.

남 변리사는 "국민의 건강생활을 위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해 시행하는 데에도 의약품 특허와 관련된 강제실시 제도의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며 "한미 FTA협상에서 의약품 특허권 강화와 더불어 강제실시발동요건을 제한할 것을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로 강제실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 '신종인플루엔자 유행시 피해 및 사전 준비의 필요성'이란 내용으로 주제발표를 한 고려대 김우주 교수는 "(인플루엔자)대유행 백신은 아무리 서둘러도 6개월 이후에나 사용이 가능하고 대량 증산해야 되는 난제가 있다"며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일찍이 닥치는 경우 준비돼 있지 않은 국가는 그만큼의 인명 피해와 사회경제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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