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선전 겨눈 「기습취재」/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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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전쟁터는 물론 불 속이라도 뛰어들어가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사명이고 본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12일 있었던 일부 북한 기자들의 기습적인 서울나들이도 같은 기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지켜보며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몰래 숙소를 빠져나간 것은 과잉경호나 자연스럽지 못한 만남들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고 치자.
그러나 진정으로 남쪽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취재하고 싶었다면 남대문시장과 구로공단·아파트와 주택가 등을 먼저 찾아가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북측 기자들은 그대신 임수경양의 집,외국어대와 동국대 총학생회 등을 찾았고 취재보다는 정치적 발언을 앞세우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
『위대하신 수령과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려에 따라 임양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외대). 『평양의 김형직사범대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동국대).
기자들의 취재활동에 대한 남북의 개념이 다른 것인지 모르지만 이들의 이날 행동은 분명히 순수한 취재목적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더욱 어이없던 것은 북측 기자들을 맞이하는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태도였다.
통일을 염원하는 심정에서 그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평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데없이 『현정권이 내각제를 추진해 장기집권음모를 획책한다』는 답변은 무엇인가.
김일성 배지를 달라고 쫓아다니며 졸라대는 어느 여대생의 모습에서는 어떤 역겨움 같은 것을 느낄 정도였다.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야 젊은 청년들의 정의감과 양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무슨 말이야 못하랴마는 그렇다고 해서 「현정권 타도」를 북한 기자들 앞에서 외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고 우리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
우리 당국은 북한 기자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동안 무얼했는지 모르겠고 혹시 자신감으로 이를 묵인하려는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만일 「다닐테면 다녀보라」는 자신감에서 이를 방치,또는 방조했다 하더라도 이들의 취재활동 아닌,속셈이 뻔히 보이는 선전활동을 애교로 보아 넘기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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