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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승진문턱 높아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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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승진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업 들어간 뒤 10년 정도 지나면 부장이 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과장에 만족해야한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단계마다 승진연한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우」「부차장」 등으로 직제자체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마다 사업확장을 억제하고 있고 이에 따라 승진문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10대 그룹의 경우 「기업체의 별」로 꼽히는 신임임원 선임현황을 보면 올해 부장에서 이사대우로의 승진이 3백56명에 그쳐 지난해의 3백64명 보다 오히려 줄었다. 회사등기 부상에 오르는 이사대우에서 이사로의 승진은 2백40명으로 지난해의2백68명보다 더욱 줄었다.
눈앞에 다가온 내년도 정기인사에서도 승진 폭이 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사원에서 부장까지 오르는데 필요한 기간은 현재 평균 15∼16년 안팎.
그러나 이는 사실상 최소 승진연한일 뿐 실제로는 단계마다 1∼2년에서 4∼5년 이상까지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부장에서 이사가 되는데 3∼5년은 잡아야하므로 대기업의 임원이 되려면 이제는 입사 후 최소한 20년 이상 걸리는 셈이다.
이에 따라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주류를 이뤘던 30대 이사는 이 제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됐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50대 이사가 주축이 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은행의 경우 80년대 초반까지는 입사후 3∼4년이면 대리가 됐으나(대졸기준)이제는6∼7년은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은행의 꽃」인 일선지점장까지는 빨라야 20년 정도 잡아야한다.
증권사들도 2∼3년전의 증시호황 때만 해도 과장급까지 지점장으로 내보내기도 했으나 이제는 차장급 이상으로 거의 다 바뀌었다.
인사관계자들은 이를 수요·공급의 원리로 설명하고있다.
즉, 사람(채용인원)은 크게 늘었으나 자리는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승진 적체현상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경제구조 자체가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구가하기 어렵게 되고있고 이직률은 점차 줄고 있는데다 자동화 등이 급진전되면서 자리부족 현상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각 기업은 이에 따라 승진적체해소를 위한 인사제도 개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올해부터 사원∼부장사이의 각 직급별 승진연한자체를 3년에서 4년으로 늘렸고 한국화약도 지난해 입사자부터 대리승진기간을 3년에서 4년으로 늘리기로 사규를 바꿨다.
이와 함께 직급신실·자격시험제 도입 등도 잇따르고 있다.
쌍룡그룹은 올해 처음 그룹부(부)회장제를 도입했고 동아건설은 올해부터 부장·차장사이에 부부장제를 신설했다.
한 회사에 두명 이상의 대표이사를 두는 「부문별사장」제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고 대부분기업이 이미 채택하고있는 이사대우제도 인사적체 해소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생겨난 제도다.
또 기아그룹은 88년부터 과장·대리 급에 대한 진급 시험제를 실시하고 있고 대한항공은 대리급에 대한 진급시험제 외에 사내외국어자격증을 따면 승진고과에 반영하는 제도도 채택하고있다.
대한통운이 실시증인 파장진급시험과 각 은행들의 대리진급시험의 경우 합격률이 50%에 못 미칠 정도로 엄격하다.
대신증권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리·과장 진급시험에 붙으면 대부분 승진시켜봤으나 올해는 점포증설억제 등에 묶여 합격이 된다해도 그중 25%정도만 승진시키는데 그쳐야했다.
승진이 어려워지면서 승진의 조건도 점차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는 셈이다.
각 기업은 이와 함께 학교에서의 월반에 해당하는 특진이나 외부인사 영입도 크게 줄이고 있다.
능력을 우대하고 분위기를 쇄신시킬 수 있는 이 점이었으나 인사적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조직내 위화감을 조성하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 상대적으로 「찬밥」신세에 머물러야 했던 이공계출신에 대해서는 기업마다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의 경우 삼성·현대·럭키금성·대우를 포함한 10대그룹 대부분에서 임원승진자중 이과출신비중이 50%를 넘었다.
기술력이 기업생존의 관건이 되면서 엔지니어출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승진제도는 근무의욕고취·동기유발·충원·분위기쇄신 등으로 기업인사관리에서 핵심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승진적체가 심화되는 것은 이점에서 자칫 기업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른 승진이 기업의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적으로도 자칫 옷을 빨리 벗어야하는 결과를 낳게하기도 한다.
승진속도만 보면 40∼50대 과장이 주류를 이루고있는 일본의 대기업보다 우리가 아직은 빠른 편이다.
승진의 속도보다는 승진제도자체의 합리성과 공정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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