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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왜요?” 떠넘기기 선수 된 경찰·검찰·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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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결정 장애 중병 앓는 수사와 재판〉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 쥐고 있다 경찰에 돌려보내면 그만
경찰은 무혐의 종결할 사건까지 검찰에 기소의견 내 책임 전가
판사는 ‘판결문 1주일에 3건만 작성’ 합의 뒤 어려운 사건 미뤄
법무부 “기한 제한” 경찰청 “인센티브”…법원은 수장 공백 사태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지난 16일 오전 11시 20분쯤 서울의 한 법정에서 공판이 열렸다. 재판장은 검사와 변호인에게 증인 명단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다음 기일은 두 달여 뒤로 잡혔다. 파악해 보니 4년 3개월 전에 검찰이 재판에 넘긴 사건이다. 한 변호인은 “어느 세월에 끝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 4시 20분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옆 낡은 빌딩 3층에 있는 부품업체를 찾아갔다. 2020년 직원의 3억원 횡령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당사자도 상당 부분 혐의를 인정하는데도 사건이 경찰과 검찰을 오가고 다른 경찰서로 이송됐다가 최근에야 재판에 넘어갔다. 이 회사 이사 P씨는 “빨리 돈을 되찾아야 하는데 피고인이 계속 재산을 빼돌려 속이 탄다”고 했다.
요즘 흔해진 검찰·경찰과 법원의 수사 및 재판 지연 사례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장 검사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는 “요즘 수사와 재판의 지연은 ‘심각하다’는 말로 설명되는 수준이 아니다”고 했다. 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 내부 움직임을 볼 때 나아질 가능성조차 안 보여서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9일 대법원 앞에 놓인 판사 비난 근조화환(왼쪽)과 2021년 대검찰청 주변에 늘어선 근조화환. 판사와 검사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자긍심을 훼손해 근무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지난 9일 대법원 앞에 놓인 판사 비난 근조화환(왼쪽)과 2021년 대검찰청 주변에 늘어선 근조화환. 판사와 검사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자긍심을 훼손해 근무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경찰 “검사 떠넘기기 심각”=수사의 출발점인 경찰에서 악몽은 시작된다. 충북 청주에 사는 부업 사기 피해자 신모(교사)씨는 지난 5월 7000만원을 뜯기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경찰서 업무 시작만 기다리던 날을 떠올렸다. “경찰에 신고하면 뭐라도 도움을 받으리란 간절함이 있었다”는 신씨는 그 뒤 경찰 조사 한 번 받고 ‘수사 중지’ 통보를 받은 게 전부다. 신씨는 “범죄를 당하고 보니 경찰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직 경찰관에게 원인을 묻자 “수사권 조정 이후 업무가 폭증해 수사관들은 엊그제 조사한 피해자가 다시 찾아와도 못 알아볼 지경”이라고 말한다. 고소 사건 등을 수사하는 경제팀·지능팀 등은 격무 때문에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한 간부는 “요즘 ‘경제팀에서 탈출하는 건 지능 순’이라고들 한다”고 전했다.
경찰에선 원흉의 하나로 ‘검찰의 떠넘기기’를 꼽는다. 과거엔 어떤 방향이든 검사가 결론을 냈던 반면 이젠 골치 아프면 경찰에게 ‘보완수사 요구’를 보내면 그만이라는 것.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해도 검사가 ’보완이 필요하다‘고 돌려보내면 검사에겐 아무 책임이 안 남는다“고 지적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겪었던 피의자 핑퐁 사건으로 설명했다.
”별로 죄도 안 되는, 드문 유형의 사건을 수사 경찰관이 한참 헤매다가 검찰에 송치했다. 검사에 떠넘긴 셈이다. 이를 받은 검사는 또 시간을 끌더니 경찰에게 보완수사 요구로 돌려보냈다. 양 기관이 결정을 회피하는 동안 피의자는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사가 기소를 안 할 거면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데 자기는 책임지기 싫으니 경찰로 돌려보내서 경찰이 불송치를 결정하라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쌓여가는 불만은 피해자들을 규합하게 한다. 지난 6월 6300만원을 부업사기범에 뜯긴 뒤 피해자 모임을 주도해온 어린이집 원장 임모씨는 “빨리 계좌를 정지해 피해금을 되찾게 도와달라고 하면 ‘경찰은 돈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범인 잡는 사람’이라고 답한다”면서 “그래놓고 피해자가 300명을 넘어서도록 범인을 한 명도 못 잡았다”고 말했다.
수사 지연이 수사권 조정 탓이라는 인식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조정 이후 수사 기간이 다소 늘어난 건 사실이나 그 이전부터 범죄의 고도화 등으로 증가 추세였다”고 반박했다.
◇검찰 “경찰이 책임 떠넘겨”=검찰 역시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한 전직 고검장은 “예전엔 검사가 경찰로부터 송치된 사건을 일정 기한(4개월) 내 처리하지 못하면 장기 미제로 분류하고 불이익을 줬다”며 “자신에게 넘어온 사건은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분명했는데 그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검사에게 송치해도 갖고 있다가 돌려보내면 아무 책임이 없는 게 심각한 허점이라는 지적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명백한 콘텐트 투자사기 사건을 검사가 쥐고 있다가 경찰에 돌려보내자 돈을 끌어모은 회사가 곧바로 파산신청을 해 피해금을 회수할 길이 막막해졌다”고 비판했다.
보완수사를 요구한 검사도 일정 부분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검찰에선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대한 검사의 지휘권이 사라졌다”며 “경찰 수사에 개입할 아무 권한이 없는데 책임을 지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한다.
검찰에선 오히려 경찰의 떠넘기기가 날로 심해진다고 말한다. 한 검찰 핵심 간부는 “불송치 결정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찰이 무조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경찰이 종결해야 할 사건을 검사가 불기소하도록 미룬다는 얘기다. 불송치로 끝날 만한 사건의 피의자가 받아야 하는 고통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핑퐁 와중에 실제로 사건이 행방불명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로 보완 수사를 요구한 사건이 이후 다른 경찰서로 이송되는 등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정말로 검사조차 사건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경찰 출신인 박상융 변호사는 “수사와 재판 지연에 따른 피해가 너무 크다”며 “승소해도 변호사만 웃고 당사자는 상처만 남을 뿐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어려운 사건 후임자에 미루는 법원=결정 장애 수준에 이른 검경 수사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블랙홀로 변해가는 법원이 기다린다. 많은 업적을 나열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퇴임사조차 ‘재판지연’ 만큼은 인정했을 정도다. 얼마 전 재판 지연의 심각성을 수치로 입증한 이형근 특허법원 고법판사(재판장)의 법률신문 기고문이 법원에서 회자했다.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 등을 통해 현실을 해부한 이 고법판사는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으로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은 미루는 재판”을 지적했다.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 훨씬 심각한 실상을 짚은 대목이다.
고위 법관들은 김 전 대법원장 시절 판사들이 일주일에 판결문을 3건만 쓰기로 합의한 것을 개탄한다. 한 전직 판사는 “열심히 하려는 법관이 옆 방 판사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 고위 법관은 “나는 기본으로 일주일에 4, 5건을 썼고 간단한 사건은 10건까지 처리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젠 같은 3건이라도 어려운 사건은 후임자에게 미루고 쉬운 사건 위주로 처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고법판사의 분석에 따르면 합의 사건 미제 가운데 2년 초과 사건이 2016년 2355건에서 2021년 5113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형사재판의 경우 미제가 2017년 8993건에서 2021년 1만2630건으로 약 40% 늘었고 2년 초과 사건은 398건에서 735건으로 80% 이상 증가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 승진제 등을 없애면서 경쟁이 사라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완책 쏟아내지만=성토가 이어지자 검찰과 경찰에선 보완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기한을 1개월로 제한하고 경찰은 3개월 안에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수사준칙 개정안을 다음 달부터 시행한다. “서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사건 수사가 조금이라도 더 빨라지는지를 고려했다”는 것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설명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제팀 경위급에 대해 근무평정에서 ‘우’ 이상으로 평가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우수 수사팀은 경정 특진 및 팀 전원 특진도 할 예정”이라고 인센티브를 강조했다.
양중진 전 수원지검 1차장은 “검사에게 보완수사를 1개월 내 하라는 것만으로는 큰 변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 지연은 해법을 내야 할 대법원장이 공백 상태인 데다 문제가 시작되던 시기에 방치하는 바람에 실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들 사이에도 경쟁 원리가 다시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동근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은 변호사의 역량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송무 교육을 강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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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월 걸리던 수사 2년 이상 끌어”

김규헌 변호사

김규헌 변호사

서울지검 강력부장 출신인 김규헌 변호사(사진)는 22일  “예전엔 3~4개월이면 끝났을 사건이 2년 이상 끄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가 뭔가.
증거 등 사법적 판단에 훈련이 부족한 경찰 실무자 단계에서 수사가 끝나니 민원인이 승복을 잘 안 한다. 경찰은 수사를 종결하는 막대한 권한이 갑자기 부여됐는데 규범이나 기한의 통제가 잘 안 이뤄지고, 검찰은 경찰에 넘기면 책임이 없어지니 수사를 방임하는 행태가 나타난다. 무고를 당하거나 피해 복구가 안 된 사람의 고통이 엄청나다.
구체적 미비점을 예로 든다면.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등검찰청에서 다시 수사하라고 내려보낼 때 원래 처분한 검사가 맡지 못하게 했다. 그래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검사가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 같은 경찰관이 다시 수사한다. 다른 결론이 나오기 어렵지 않나. 불송치 결정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니 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예전엔 검사든 판사든 기록 보따리를 싸 들고 가 밤새는 일이 흔했다. 요즘 그런 걸 바랄 순 없겠지만, 업무 시간만큼은 사적 핸드폰도 안 본다 할 정도로 집중해야 수사와 재판의 지연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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