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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사기 고발한 업체 다시 찾는 코미디 같은 정부 용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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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맹점투성이 정부 조달·용역 체계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하청회사를 사기 혐의로 민·형사 고발한 기업이 그 회사에 계속 하청을 주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기관에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법규·제도의 허점과 하청업체의 ‘독점적’ 위치 때문이라지만 국민 눈높이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올해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 사례를 통해 맹점을 짚어본다.

형사고발 해놓고는 용역계약 체결

국세청은 최근 한 용역업체와 전체 규모가 485억원에 달하는 정보화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이 업체가 인건비를 부풀려 대금을 과다 청구한 혐의로 국세청이 조달청에 신고했을 뿐만 아니라 민사소송과 형사고발까지 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재선·김천)에 의해 밝혀졌다.

‘부정당’ 제재 받고도 수주 참가
가처분 소송으로 자격 유지 꼼수
고발해놓고 할 수 없이 수의계약
“정부 조달 방식 시급히 개선해야”

김창기 국세청장이 지난 10일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있다. 김 청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유플러스아이티에 대해 국세청이 사기 혐의로 형사고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시스]

김창기 국세청장이 지난 10일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있다. 김 청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유플러스아이티에 대해 국세청이 사기 혐의로 형사고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시스]

송 의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1월 7일 용역비 20억4000만원을 과다청구한 혐의로 홈택스 상담 수탁업체인 유플러스아이티와 효성ITX를 ‘불공정 조달 행위’로 조달청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2022년 12월 8일 조달청은 유플러스아이티를 ‘부정당 업자’로 지정했고, 업체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어 국세청은 지난해 6월 30일 유플러스아이티에 대해 17억1000만원, 효성ITX에 대해 6000만원 등 과다청구한 용역비 17억7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뿐 아니다. 송 의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8월 25일 유플러스아이티에 대해 가압류 조치를 했고, 지난해 10월 11일엔 형사고발까지 했다. “퇴사자의 퇴사일자를 바꿔 결원 비율을 허용 범위 안에 있는 것처럼 조작한 혐의는 사기죄 고발감”이란 법무 조언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국세청은 지난해 1월 불공정 행위 신고를 한 이후 지난 5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유플러스아이티와 사업 8건을 계약했다. 전체 계약액은 485억7268만원에 달한다는 것이 송 의원의 지적이다. 이 중 7건이 수의계약이었다. 또 총액이 126억원에 달하는 3건의 계약은 국세청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이후 체결됐다고 송 의원은 지적했다. 다만 복수 업체들이 공동 수주한 사업들이라 유플러스아이티만의 계약액은 203억원 선으로 집계됐다.

업체는 “인건비 부풀린 적 없다”

유플러스아이티 고위 관계자에게 물었다.

신고당한 뒤에도 8건을 국세청에 수주했다는 지적이 맞나.
“거의 맞다. 다만 우리가 수주한 사업액은 전체액(485억원)의 3분의 1선이다. 또 지난해 수주한 사업은 그 전해에 체결됐고, 올해 수주한 사업은 2건뿐이다. 국세청 발주 사업은 성격상 전문업체를 써야 하는 점도 고려해 달라.”
콜센터 근무 인원을 부풀린 의혹도 있는데.
“아니다. 전체 인원의 5% 이내에선 결원이 돼도 인정이 된다. 또 상담 업무는 난이도가 높아 6주간 교육받은 뒤 투입되는데, 교육받는 이들을 근무자로 인정할 필요성도 고려해야 한다.”
휴직자의 아이디를 도용해 유령 근무자를 만들어 대금을 청구했다는 의혹은?
“오해다. 교육받는 도중에 나가는(휴직하는) 이들이 있는데 아이디 부여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 신규 충원자에게 휴직자 아이디를 임시로 쓰게 한 것뿐이다.”

국세청 “우리도 답답”

국세청 관계자에게 물었다.

민사소송에다 형사고발까지 한 업체와 계약을 이어간 이유는.
“문제의 사례들은 1개 업체(유플러스아이티)만 단독 응찰해 연속 유찰된 것이다. 이러면 국가계약법에 따라 단독 응찰한 업체를 외부 위원들이 평가해 적합하다고 판정되면 수의계약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은 조달청이 맡고, 국세청은 관여할 수 없다.”
국세청이 유플러스아이티를 불공정 행위로 조달청에 신고한 지 열흘여만에 해당 업체가 “사업에 적합하다”는 평가 결과를 조달청에 보낸 공문. [사진 송언석 의원실]

국세청이 유플러스아이티를 불공정 행위로 조달청에 신고한 지 열흘여만에 해당 업체가 “사업에 적합하다”는 평가 결과를 조달청에 보낸 공문. [사진 송언석 의원실]

유플러스아이티를 불공정 행위자로 조달청에 신고한 지 열흘 만에 그 업체가 ‘사업에 적합하다’는 공문을 조달청에 보냈다. 코미디 아닌가.
“우리도 답답하다. 그러나 현행 법규상으론 조달청에 신고해도 ‘부정당 행위’란 판정이 나기 전엔 응찰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또 부정당 행위로 판정이 나도 해당 업체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 법원이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업체의 응찰권은 유지된다. 유플러스아이티도 판정 난지 며칠 만에 가처분이 인용돼 응찰권이 유지돼왔다.”
응찰을 제한할 다른 방법은 없나.
“조달청과 업체 간에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 유일한 해법이다. 단, 조달청이 이겨야만 응찰이 제한될 수 있다. 게다가 재판 완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국세청이 제기한 민·형사 소송도 응찰을 제한하는 효과는 없다.”
유플러스아이티만 단독 응찰해 수의계약이 불가피했다는 건데 대안이 없나.
“국세청도 경쟁을 유도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문제의 사업은 세법이 바뀔 때마다 그 내용을 시스템에 반영하는 것인데, 세법이 어렵다 보니 전문성이 요구된다. 게다가 관련 업체가 워낙 소수다 보니 수의계약이 이어진 듯하다. 국세청뿐 아니라 정부기관 대부분이 하청업체와 관련해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조달청이 관련 법규를 개정하거나 불공정 업체 신고 판정 기간을 단축하는 등 개선책 논의에 나섰으면 한다.”

송언석 “부정당 업체 규제강화 해야”

국회에서 질의중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재선, 김천)

국회에서 질의중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재선, 김천)

이번 국세청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6년간 조달청으로부터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은 기업들이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낸 뒤 정부 사업 입찰을 따낸 계약 액수가 2조8000억원을 넘는다고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재선·익산을)이 조달청 국감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이에 따르면 부정당 제재를 받은 기업이 집행정지 기간 중 국가사업을 따낸 금액은 2018년 708억원, 2019년 2876억원, 2020년 8157억원, 2021년 9553억원, 2022년 5045억원, 2023년(6월까지) 2157억원 등 6년간 총 2조8496억원으로 집계됐다. 그중 상위 5개사의 비중이 48.2%(1조3749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이 집행정지 기간 중 따낸 계약은 200건에 달한다.

A사는 3년 5개월의 집행정지 기간 중 총 50건의 입찰에 참여하여 5432억원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고, B사도 2231억원 규모의 계약을 취했다. C사(22건, 2107억원)와 D사(92건, 2050억원), E사(29건, 1929억원)도 집행정지 기간 중 2000억원 내외의 계약을 따냈다.

한 의원은 “조달청 제재를 받아도 법원의 가처분이 인용되면 즉각 응찰 자격이 생긴 결과”라며 “조달청의 부정당 업자 제재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조달청은 입찰 제한 강화 등 법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송언석 의원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부정당업자로 제재받은 2130건 가운데 집행정지를 신청한 건수가 601건인데, 인용된 건수가 480건으로 인용률이 81.2%에 달한다. 하지만 조달청과 제재 업체 간 진짜 싸움인 행정소송에선 조달청의 승소가 298건, 패소가 90건으로 승소 건수가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정당 행위가 법정에서 최종 인정되더라도 재판 완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을 악용해 일단 집행정지 가처분만 인용되면 응찰을 계속해 정부 사업을 따내는 기업들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송 의원은 “게다가 조달청이 최종판결에서 승소하더라도 이미 낙찰받은 사업에 대해 계약을 취소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문제”라며 “부정당 행위가 최종 확정된 업체를 제대로 규제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조달청 “수의계약 논란 해소 추진”

이와 관련해 조달청은 일단은 유찰사업의 수의계약 논란부터 해소한다는 입장이다. 조달청은 24일 ‘조달평가 공정성·전문성 제고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조달청 관계자는 “단일업체의 응찰로 인해 유찰된 사업은 그동안 수요기관(정부기관)이 무작위로 선정한 평가 위원들이 해당 단일 업체의 적합성을 평가해왔지만 전문성 부족 및 유착 의혹 등으로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조달청이 전문성과 투명성을 갖춘 평가 대행 서비스를 이달 말부터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은 온라인으로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평가위원은 평가집행자의 감독하에 대면 회의로 이를 평가하도록 해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