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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검찰은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에 반색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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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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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을 요하는 수사는 시간이 흘러야 실체가 나타난다. 파편처럼 튀어나오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혐의가 일목요연하게 정돈된 자리는 지난달 21일 국회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면서 “범죄의 정점”이라며 피의사실을 상세히 설명했다.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안 제안설명이 길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한 장관에게 짧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체포동의안 제안설명이 길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한 장관에게 짧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닷새 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 결과는 기각이었다.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장문의 사유를 내놨다. 검찰과 이 대표의 주장 및 관련 자료를 9시간 넘게 살펴본 판사의 생각이기에 수사 결과를 짐작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각양각색의 해석이 쏟아졌다. 수사와 재판 경험이 많은 법조인들은 유 판사가 정리한 793자를 분석해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해 온 일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개인차가 났지만, 비슷한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 적지 않다.

 유 판사가 편향적 재판으로 의심받아온 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에 대체로 동의했다. 한 전직 고위 법관은 “그는 그런 판사는 아니다”고 단언했다.
 기각 결정 자체에 대해 영장 판사 출신들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유를 보면 영장 판사가 판단해 발부하거나 기각하면 될 만한 사안”이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기각 결정 자체가 특별히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상세히 쓴 사유가 오히려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소심한 처사”(고위 법관)라는 의견과 “검찰과 국민에게 예의를 갖춘 것”(전직 고위 법관)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법조인 사이에 견해차가 두드러진 부분은 사유 첫머리에 나온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다. 유 판사가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만큼 이 부분은 유죄 가능성이 크다고들 본다. 다만 정치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형량이 나올지 의문이다.

 쟁점은 수사 본류인 백현동 사업 및 대북송금과 이 사안의 연관성이다. 한 영장 전담 출신은 “이 대표에게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설득하려고 검찰이 위증교사를 포함한 듯하다”며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영장 판사 출신은 “주요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을 자신이 없어서 끼워 넣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전직 검찰 간부는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긴 한데, 옳은 방식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유에 대한 해석이 충돌하는 대목도 여기다. “위증교사가 소명된다고 해놓고 뒤에서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고 하니 꼬이는 것”(고위 법관)이라는 비판과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범죄 소명인데 주요 혐의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설명”(전직 고위 법관)이라는 수긍이 갈린다.
 영장 전담 출신들은 “어떻게 말해도 논란이 커질 사안이어서 평소대로 짧게 밝혔으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도주 우려가 없고 범죄 소명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식이다. “이럴 경우 판사는 이후 일절 얘기를 못 하고 검찰은 주장을 마음대로 하는 관행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영장 판사 출신)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유 판사는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고 검찰은 17일에도 “논리적 완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많다”(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고 비판했다.

 요약하면, 검찰 수사에 결정적 증거가 충분치 않아 보이고 새롭게 부각된 위증교사를 주요 혐의의 증거 인멸 우려와 연관시킬지는 의견이 나뉜다.

통과 쉬운 국회 비회기 놓치고

확률 낮은 회기 중에 제출 의문

 영장 기각 후 3주가 지나면서 윤곽은 조금 더 선명해진다. 검찰은 위증교사 건을 별도로 재판에 넘겼다. 대북송금 사건은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한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민주당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면서 회기가 아닐 때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방탄 국회’를 안 열겠다고 했다. 그랬다면 이 대표 단식도, 요란한 표결도 없었을 터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가 더 필요하다며 회기 중에 체포안을 제출했다. 구속 확률이 뚝 떨어지는 선택지다. 체포안은 가까스로 통과됐다.
 수사가 미진해 비회기를 놓쳤다면 수사를 일단락했기에 체포안을 냈을 텐데 영장이 기각된 뒤 다시 수사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굳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직전에 체포안을 제출해야 했을까. 위증교사를 넣었는데도 영장이 기각된 상황인데, 체포안이 의외로 통과됐을 때 검찰은 마냥 흡족했을까.

의원 강제 수사 방식 고민 필요

 앞으로도 국회의원 수사는 이어진다. 한 차례 체포안이 부결된 제1야당 대표의 남은 혐의가 영장 발부를 확신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불구속기소 할 순 없었을까. 위증교사에서 보듯 시기 조절이 가능한 수사라면 비회기에 영장을 청구하면 낫지 않을까. 22대 국회 여야 구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알 수 없는 지금이 이런 원칙을 만들기에 최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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