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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0.0007% 대 100%…숫자로 따져봤다, 장관 문책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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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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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본 민망한 광경 중 압권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벌어진 장관 수색·추격전이다. 국회에 출석하기로 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종적을 감추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등이 추적에 나섰다.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을 발견한 권 위원장이 “장관 어딨어요”라고 소리쳤다. 조 대변인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의원들은 “도망가지 말라”며 쫓아갔다. 방송 카메라가 화장실 안을 비추는 황당한 상황이 중계됐다.
 영국 스카우트는 서울에서, 미국 대원은 평택 미군기지에서 소일한 ‘뿔뿔이 잼버리’가 걸그룹 뉴진스까지 동원한 위문공연으로 미봉되나 싶더니 촌극은 시즌 2로 이어진다. 잼버리와 함께 퇴장할 줄 알았던 김 장관은 꿋꿋하다.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외국인 참가자가 지난달 5일 연합뉴스에 보낸 사진. 다리에 벌레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외국인 참가자가 지난달 5일 연합뉴스에 보낸 사진. 다리에 벌레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연합뉴스]

 여가부가 잘했다는 감사 결과가 나올 리 없지만, 영화 ‘쥬만지’에 나올 법한 벌레들이 다국적 대원 팔다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해서 감사원이 김 장관을 수사 의뢰할 가능성은 작다. ‘국제 망신죄’ 역시 유죄 판례를 못 봤으니 어쩌면 계속 자리를 지킬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참사와 과오의 문책 과정을 보면서 현장 실무자만 처벌하는 방식의 한계를 절감한다.

실무자 처벌보다 개선 가능성

 대형 사고의 책임을 수뇌부에 물어야 하는 이유는 수학적, 아니 산수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지하차도 참변에서 112 신고에 제대로 대처 못 한 경찰의 경우를 보자. 현장 직원 한 명을 징계할 경우 경찰 14만 명 중 자신이 문책당할 확률은 14만분의 1이다. 0.0007%다. 2명을 적발하면 7만분의 1이 되며 10명을 처벌하면 1만4000분의 1이다. 0.007%의 확률을 걱정해 달려나갈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징계 수준을 경찰서장으로 높이면 258분의 1로 올라간다. 0.38%다. 지방경찰청장은 18분의 1(5.6%)이다.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전국 어디서 물의를 빚어도 문책 확률 100%다.
 국민을 살리려는 노력은 이 확률과 비례한다. 태풍이 오면 경찰청장은 지방경찰청장 18명에게 24시간 대비하라 지시할 테고 사고가 터지면 경찰서장에게 뒷짐 지고 걷지 말라고 당부하리라. 그래도 119 신고는 놓칠 수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으로 높이면 경찰과 소방이 모두 긴장한다. 지금처럼 0.0007% 또는 0.38%의 문책 확률에 기대는 시스템은 불안하다. 이태원 참사 9개월 만에 오송지하차도에서 또 112·119 전화가 무용지물 된 게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밝혀진 부끄러운 자화상이었습니다. 작지만 강한 국가였던 한국은 국민의 안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기본이 덜 된 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김현숙 장관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2014년 5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대처를 질타하며 내놓은 말이다. 9년 전 목소리를 들어보면 지금 자신의 처지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지하철 2호선 사고 등을 거론한 뒤 “매뉴얼은 있지만 허둥대는 일이 많았다”고 질타하는가 하면 “많은 국민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초기에 왜 대응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생각을…”이라고 일갈했다.

 사죄하는 태도 역시 판이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에 별 책임이 없는데도 “국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몇 번을 사과해도 부족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반면 모두가 자신만 쳐다보는 잼버리 사태에 대해선 개막 한 달 만에야 사과했다.

잼버리 망신 부른 여가부 장관

버틴다고 제대로 일할 수 있나

 어제도 부산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했지만 제 역할이 가능할까. 김 장관이 ‘여성 안전’을 말하면 잼버리 여성 샤워실 침입 남성의 늑장 처리 논란이 떠오르고 ‘청소년 보호’를 강조하면 링거 주사를 맞는 스카우트 대원과 외국 학부모 항의가 생각날 터다. 한 전직 장관은 “무슨 일이 터지면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장관만 속죄양 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김 장관 정도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해야 옳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라도 나서야 한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정홍원 총리가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을 건의한 선례가 있다. 한 총리는 잼버리 현장에서 변기 닦는 사진으로 감동을 줬다. 손수 세척한 변기로 근심을 던 인원보다 총리가 장관을 해임 건의함으로써 걱정을 해소하는 사람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최근 군 혼란의 책임을 물어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교체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대한 잘못으로 국민에게 상심을 안긴 고위 공직자가 오히려 무탈, 장수하는 아이러니는 이쯤에서 끝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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