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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특허 받은건 사실이었다..."특허받은 로또 예측" 그 업체의 민낯

중앙일보

입력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민 꿈 짓밟는 로또 당첨 번호 사기〉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처리 33% 늘어
“지난주에만 2등 17명 당첨” 소비자 유인
특허 업체 찾아가 보니 다른 이름 간판
특허청 “로또 당첨 예측은 불가능”

만약 일주일 뒤를 알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면 사람들은 로또복권부터 살 테다. 오는 23일에 추첨하는 1086회차의 당첨 번호 6개를 미리 보고 1, 2등에 적중하면 몇백억원을 번다.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회사들이 있다. 다음번 로또 당첨 번호를 수학적으로 계산했다고 주장한다. 특허청 특허를 앞세운 솔깃한 제안에 수십만~수백만원을 내고 예상번호를 받는다.

‘로또 예측 기술’ 내걸고 현혹

 피해가 속출한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올해 들어 8월까지 처리한 로또 예측 피해 구제 사례가 52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91건)보다 33% 늘었다. 지난달 29일 충북 음성의 소비자원에서 만난 관계자는 “이 회사들은 먼저 ARS 전화로 마케팅한 뒤 관심을 보이면 다시 전화를 걸어 본격적으로 끌어들인다”고 귀띔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로또 예상 번호를 알려준단다. 안내대로 몇 개 번호를 누르자 통화가 끝났다. 1시간 47분 뒤 한 여성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로또 번호 신청자가 많아 전화가 늦었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19만9000원을 내면 20개월 동안 2등과 3등 당첨을 보장한다”며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은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 3등에 당첨이 안 되면 전액 환불해 준다고 밝혔다. 그는 “4, 5등 같은 잔 등수는 말고 지난주만 2등 17명, 3등 132명 당첨됐다”는 놀라운 얘기를 했다.
 통화가 끝나자 그는 이○○ 수석팀장이라고 적힌 명함 사진과 회사 사이트 주소를 보냈다.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첫 화면에 특허청 특허를 부각한 배너가 뜬다. 거기에 적힌 정보를 검색해보니 진짜로 ‘로또 당첨예상번호…’라는 특허가 나온다. 특허공개전문의 ‘발명의 효과’ 항목에 “당첨확률이 높은 로또 당첨예상번호 서비스가 가능한 효과가 있다”고 적었다.

전화번호는 서울, 주소지는 대전

 로또 번호를 맞히는 게 가능할까. 지난 13일 오후 주소지인 대전의 빌딩에 가보니 빼곡한 간판과 층별 안내 어디에도 회사 이름이 안 보인다. 해당 호수엔 전혀 다른 이름의 간판이 붙어있다. 유리문 너머로 보니 집기가 거의 없다. 안에 있던 사람에게 “로또 복권 서비스를 문의하러 왔다”고 하니 다른 층의 회의실로 안내했다. 로또 복권 예측 시스템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빈 테이블만 있다. 천장에는 CCTV로 보이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회사 관계자는 “아까 사진을 찍던데 전부 지우라”고 요구했다. 사무실 외경과 층별 안내 게시물을 찍었을 뿐이라고 설명했으나 “전부 지워달라”고 반복했다. 잠시 법률적인 부분을 생각해봤으나, 회사의 답변을 들어야 하겠기에 보는 앞에서 삭제했다.
-여기에 이○○ 팀장이 근무하는가.
“모르는 사람이다. (잠시 휴대전화에서 뭔가를 찾더니) 예전에 근무했던 사람인데 그만뒀다. 마케팅할 때 실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긴 대전인데 가입 전화는 서울 지역 번호로 왔다.
“다 그렇게 한다. 마케팅 회사가 서울에 있다.”
-로또 당첨 번호 예측이 가능한가.
“우리는 특허청에서 공식적으로 특허를 받은 기술이다.”
-당첨 번호 예측 시스템과 번호를 추출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나.
“곤란하다.”
-사기업자들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예측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면 이 업체는 다르다는 걸 입증하는 기회가 되지 않나.
“안 된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로또를 불신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당신이 명함을 줬지만, 진짜 중앙일보 기자인지 어떻게 믿나.”
-(얼굴 사진이 함께 게재된 칼럼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주며) 이 기사를 보라. 얼굴이 똑같지 않나.
“그래도 보여줄 수 없다.”
-지금까지 3등 이상 당첨된 횟수가 어느 정도 되나.
“알려줄 수 없다.”
-로또 회사들이 가입할 땐 당첨이 안 되면 전액 환불해준다고 하고선 막상 돌려달라면 연락을 끊는 등 피해가 크다.
“우리는 그런 적 없다. 전부 환불해줬다.”
로또 예상번호를 추출하는 과정도, 당첨 실적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로또 번호를 맞히는 기술이 있다면 자신들이 직접 복권을 사도 큰돈을 벌 텐데 사무실은 휑했다.

당첨과 무관한 임의번호만 추출

 그렇다면 특허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정부대전청사에 있는 특허청을 찾아갔다. 특허청 관계자는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는 기술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어떻게 특허를 받았을까. 관련 부서에 확인하더니 “기술의 진보성 등으로 특허가 결정된 사안일 뿐 당첨 확률을 높인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특허는 특허청에서 지난 6월부터 무효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회사도 알고 있느냐고 묻자 “당연하다”고 했다. 특허청의 무효 청구를 알면서도 계속 특허를 앞세워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허청에 따르면 로또와 관련한 특허는 여러 건 출원됐다. 그러나 ‘판매 시스템’ ‘복권 대행’ 등 당첨 확률과 무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출현 가능성이 높은 당첨예상번호 추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허를 거절하거나 무효 절차를 밟는다.
 지난해 4월 특허심판원이 무효로 심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정문에는 ‘복권 당첨 결과는 회차 간에 독립적으로 시행되는 독립 사건으로, 이전 복권 당첨 결과는 다음 복권 당첨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기술상식’이라고 판단했다. 당첨 예상 번호에 대해 ‘당첨 가능성과는 무관한 임의의 번호를 추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못 박았다. 로또복권의 당첨확률을 높인다는 주장을 검증한 학계 연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입증됐다. (‘로또복권의 당첨번호에 대한 무작위성 검정’ 임수열·백장선)

“로또 안 맞아 환불 요구하니 욕해”

 그런데도 피해는 이어진다. 올해 들어 1372 소비자상담센터로 접수된 사례만 3600건을 넘어섰다.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당첨 번호를 보내준다는 ‘로또○○’ 회사에 가입했는데 몇 달 동안 당첨이 안 돼 환불을 요구했더니 욕을 하더라”고 말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복잡한 로또 예상 번호 계산 수식을 그럴듯하게 올려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최우성 사무국장은 “사업자 대부분이 과거 당첨번호를 분석하고 조합하는 단순한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며 당첨되지 않으면 100% 환불해준다고 현혹한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 공공기관을 사칭하면서 피해 소비자에게 접근해 추가 피해를 유발한다”고 했다.
 다른 로또 업체를 먹잇감 삼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해킹 등으로 빼낸 우리 고객 정보로 연락해 환불을 유도한 뒤 더 비싼 서비스에 가입시켜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걸려온 가입 유도 전화 내용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소비자원 “사기죄로 처벌 가능”

 변웅재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은 “로또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 거래하는 경우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에 규정된 계속거래업자의 금지행위 위반에 해당한다”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하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또복권에 여러 차례 당첨됐다며 TV에 나왔던 인사가 100만원을 낸 유료회원에게 당첨 예상 번호를 보내주는 식으로 고객을 유치했다가 법원에서 징역 1년 8월형을 선고받았다. 가입비만 받고 폐업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변 위원장은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준다는 서비스에 속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신고를 당부했다.

“특허 받았다고 효과 우수한 것 아니다”

안철균 대표변리사

안철균 대표변리사

로또 관련 특허가 결정된 것에 대해 안철균 특허법인 그루 대표변리사(사진)는 17일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이 곧 뛰어난 효과를 가진 기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로또 관련 특허는 “미래에 발생할 일에 대한 확률의 문제라 실제 효과를 검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왜 이런 특허가 심사를 통과하나.

“우리나라 특허법상 중요한 것은 이전 발명과 동일한지를 보는 신규성, 이전 발명부터 용이하게 발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진보성, 그리고 산업상 이용 가능성 여부다. 출원된 발명 이전에 공개된 선행 특허나 논문 자료를 검색해 신규성과 진보성을 부정하기 어려우면 특허결정을 한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 안 따지나.

“출원 발명의 효과가 실제 발현되는지를 심사 과정에서 확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사 과정에서 발명을 실제 재현해서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허가 효과를 입증하는 건 아닌가.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은 심사관이 유사한 선행기술 자료를 못 발견했다는 뜻이지, 효과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자는 이런 점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글=강주안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