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송전설비에 신재생 업자 '알박기'…5년 넘긴 사업 82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5면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에서 자전거을 타는 시민 뒤로 송전탑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에서 자전거을 타는 시민 뒤로 송전탑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송배전 등 전력망 상황이 빡빡한 가운데, 신재생 발전 시설을 중심으로 '알박기'식 사업 계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 계통을 미리 확보한 사업자들의 발전소 운영이 늦어짐에 따라 신규 사업자 진입을 막고, 전력 수급 불안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 측과 송전용 전기설비 이용 계약을 체결한 뒤 당초 제시한 사업 개시일을 넘겨 상업 운전이 미뤄지고 있는 발전 사업은 372건(16.2GW)으로 집계됐다. 정상 추진 중인 사업(218건)보다 훨씬 많다. 송전용 전기설비 이용 계약은 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전력을 실어나를 '길'을 여는 것으로, 사실상 사업을 위한 첫 단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사업 지연 372건 중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이 369건(99.2%)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일반 발전은 3건(0.8%)에 불과했다. 이러한 지연 사유는 인허가·민원 등 부득이한 사항이 212건(6.8GW)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사업 계획 변경이나 자금 조달 같은 내부 사정도 95건(8.3GW)으로 적지 않았다. 신재생을 중심으로 사업 수익성을 재검토하거나 자본 부족에 따른 매각 등이 추진되면서 사업 자체가 흔들리는 셈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그러다 보니 계약 체결 후 5년을 넘긴 사업만 82건(14.4GW)에 달했다. 송배전 등의 용량은 한정돼 있는데 이를 선점한 계약자가 기약 없이 발전소 운영을 미루기 때문에 후발 사업자는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전력망 활용도도 떨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선의의 발전 사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당초 계획한 전력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수급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특히 중소 사업자 중심인 신재생 발전은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하려는 경우나 자금 조달, 민원 해결에 어려움을 겪어 지연되는 일이 잦은 편이다. 능력이 부족한 사업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전도 지난해와 올해에 걸친 실태점검 이후 지연 사유를 제대로 소명하지 않은 25건(1건은 이용 신청 효력 상실)의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 체결 후 2년 이내에 착공 등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는 사업자와는 해지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계약이 '공염불'이 된 25곳 중 인천 영흥 화력발전소(7·8호기)를 뺀 24곳은 수백㎿ 이하의 신재생 시설이었다. 일부는 최초 계약 후 6~7년 이상 운영이 미뤄지다가 뒤늦게 해지되기도 했다.

태양광 시설 모습. 사진 국무조정실

태양광 시설 모습. 사진 국무조정실

송배전 시설 등은 이미 수요(수도권)와 공급(동해·서해안) 지역 불균형으로 인해 포화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이 수도권에 줄줄이 들어설 예정이라 전력 계통 불안정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전력망 건설 사업은 지연되기 일쑤다. 효율적인 전력망 활용이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를 고려해 한전 측도 '불성실 사업자'를 빠르게 걸러내기 위한 규정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영국 등 외국에선 의무적인 이행 보증금 예치나 계약 위반 시 입찰 참여 제한처럼 한국보다 강력한 제재 수단을 두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알박기'를 줄이면 전력망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해지한 계약 13건으로 약 0.5GW의 전력 용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금희 의원은 "전력망을 무한정 확대할 수 없는 만큼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해외 주요국처럼 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시설 운영을 미루는 불성실한 발전 사업자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