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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한국 경제 뉴노멀로 굳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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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저성장이 한국 경제의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3년 연속으로 평균에 미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7월 한국의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5%, 수입액은 25.4%나 감소했다. 이러한 수출 부진은 성장률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OECD는 지난 19일 올해 한국 경제가 전년보다 1.5% 성장할 것이라며 기존 6월 전망치를 유지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것과 대비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 경제성장률은 OECD 평균을 3년 연속 밑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021년 OECD 회원국 평균 성장률은 5.8%, 한국은 4.3%였다. 지난해엔 각각 2.9%와 2.6%로 한국이 평균보다 0.3%포인트 낮았다. OECD 평균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6월엔 1.4%였는데 주요국의 경기 회복세를 고려하면 11월 전망 때 상향 조정이 유력하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한국이 이젠 ‘성장 중위권’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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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2년 2년 연속으로 OECD 평균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는 한국 외에 라트비아·스위스·체코·독일·슬로바키아·핀란드·룩셈부르크·일본 등이다. 일본은 하반기 들어 뚜렷한 경기 회복 추세를 보여 올해는 ‘평균 이하 그룹’에서 탈출할 것은 물론,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에 의존한 한국 경제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에 의존해 수출과 성장이 호황을 누렸지만, 반대로 반도체 사이클에 따른 불황이 닥치자 반작용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기회복이 더딘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며 “중간재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수출되는 최종 소비재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을 글로벌 핵심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까지 고려한다면, 높은 중국 의존도는 장기적으로도 한국 경제에 상당한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

주요국 2023년 성장률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OECD]

주요국 2023년 성장률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OECD]

전망도 가시밭길이다. 당초 정부가 상반기엔 경기가 둔화했다가 하반기 회복할 것이라는 ‘상저하고’ 전망을 제시한 건 중국 경기회복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 등 중국 경제가 부진하면서 한국 수출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올해 1~7월 한국 총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다. 주력 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는 대중국 수출액 비중이 45%에 달한다. 높은 중국 수출 의존도가 회복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5%대 기준금리를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등 고금리 장기화도 예고됐다. 긴축이 앞으로도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강달러’도 오랜 기간 지속할 예정이다. 비싸진 달러로 각종 원자재 가격 부담은 커지고 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한다.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에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재돌파를 가시권에 두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일단은 물가가 걱정이고, 유가가 올라가면 전체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교역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처럼 수출에 많이 의존하고 통화정책 수단이 제한적인 국가에는 충격이 더 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부적으로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 이민자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론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수출국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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