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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인상여의 문경지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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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중국 전국시대 칠웅(七雄) 가운데 조(趙)나라는 국력이 약해 늘 진(秦)나라의 핍박을 받았다. 조나라에 화씨(華氏)라는 사람이 벽(璧)이라는 천하제일의 옥을 갖고 있었는데 너무도 아름다워 세상이 그것을 완벽(完璧)이라 불렀다.

진나라가 완벽을 탐해 빼앗자 조나라 관리 인상여(藺相如)가 사신으로 진나라로 갔다. 인상여가 담력으로 진왕을 꺾고 완벽을 찾아오니 조나라 왕이 그를 승상으로 삼았다. 전국 시절이니 모름지기 무사가 우선인 세상이었다. 그런데 몸이 허약해 손은 닭 모가지를 비틀 힘이 없고 다리는 나막신이 무거웠던 인상여가 승상의 지위에 오르자 장군 염파(廉頗)가 참지 못하고 기회만 닿으면 인상여를 모욕하고 죽이려 했다.

신영웅전

신영웅전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인상여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거나 마주치지 않고 다툼을 비껴갔다. 인상여가 염파를 피해 다니자 세상 사람들이 그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그 말을 들은 인상여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진나라가 우리를 병탄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이 화목하지 못함을 진나라가 안다면 곧 우리를 쳐부수러 올 것이니 그때는 무슨 힘으로 우리가 진나라를 이기겠소. 그래서 나는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걱정해 염파 장군의 모욕을 견디는 것이지, 진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내가 아무려면 무서워 그를 피하겠소.”

그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너무 부끄럽고 송구한 나머지 윗옷을 벗은 채 채찍을 등에 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했다. 서로 목을 베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의리를 맺고 나라를 지키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문경지교(刎頸之交)라 칭송했다. 지금 나라가 안팎으로 어렵다. 역사는 인상여와 같은 합리적 독종(毒種)이 이끌어 왔다. 지금 이 나라 정치에는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고 전과자와 ‘찌질이’가 더 많다. 그래서 걱정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