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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1 야당 대표의 무기한 단식, 공감 어렵고 명분도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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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기국회 전날 극한 투쟁 선언, ‘정치 실종’ 자초

체포동의안 상정 임박 시점도 논란, 즉각 중단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느 모로 봐도 공감하기 어렵다. 169석을 보유한 제1 야당의 대표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처사란 비판이 과하지 않다. 지금 나라의 현실을 보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더욱 위중해졌고, 경제도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위축된 가운데 자동차·조선 등 주력 업계의 파업 위기로 빨간불이 켜져 있다. 입법 권력을 장악한 원내 1당의 대표가 단식 운운하며 의회를 내팽개치는 듯한 행동을 할 시점이 아니다.

단식은 자신의 의사 관철을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다. 더구나 제1 야당 대표의 단식은 선언만으로도 정국을 급랭시켜 정치가 실종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장 1일 개원하는 정기국회부터 여야의 강대강 대립 속에 파행할 공산이 커 산적한 민생 입법과 예산 심사가 공전할 우려가 높다. 이 대표 말마따나 윤석열 정부가 국정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면 국회에 들어가 시시비비를 따져 개선을 촉구하는 게 원내 1당이자 공당의 올바른 자세다.

게다가 이 대표는 대장동·백현동·대북송금 게이트 등 개인 비리 의혹으로 올 들어 다섯 번째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이 대표를 조사한 뒤 정기국회 회기 중 두 번째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불체포특권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체포동의안 말씀들 자꾸 하시는데 여러분은 이게 구속할 사유에 해당된다고 보나”라고 반문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던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는 다른 기조를 보였다.

이러니 그의 단식 선언을 놓고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면 부결 표를 던지도록 민주당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방탄용 노림수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것이다. 무기한 단식 카드로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켜 사법리스크 논란과 대표직 사퇴론을 덮으려는 속내가 있는 건 아닌지도 의문이다.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 대표는 시점과 상황 어디에도 맞지 않는 극단의 행동을 멈추고 정치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1일 개원하는 의회는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다. 여야 모두 한발씩 물러나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이 대표는 명분 없고 국민의 공감도 얻기 어려운 단식을 중단하라. 정권을 견제하되 민생에는 협력하는 야당 대표의 본분으로 복귀해야 한다. 정부·여당 역시 일방독주식 국정으로 야당 대표가 극한 선택을 하게끔 빌미를 준 책임은 없는지 성찰하며 협치로 국정을 풀어가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자신의 책무를 외면한다면 민심의 호된 회초리를 맞을 뿐이다.